여한십가문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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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십가문초
여한십가문초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택영이 편찬한 『여한구가문초(麗韓九家文抄)』에 그의 제자 왕성순(王性淳)이 김택영의 서(序) · 기 · 설(說) · 문(文) · 행장 · 묘갈명 · 묘지명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문집.
내용 요약

『여한십가문초』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인 김택영이 편찬한 『여한구가문초』에 그의 제자 왕성순이 김택영의 문장을 추가하여 편집한 문집이다. 김택영이 고려 시대부터 김택영 당대까지의 문장가 9인을 선정하였다. 김택영은 그들의 문장 가운데 우아하고 바른 것 95편을 가려 뽑아 『여한구가문초』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 왕성순이 『여한구가문초』를 재편집한 후, 김택영의 문장을 합편하여 『여한십가문초』로 제목을 바꿔 1921년에 발행하였다. 『여한십가문초』는 조선 후기까지 남아 있는 문헌 가운데에 정수만을 뽑아 모음으로써 잘된 문장의 전형을 제시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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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택영이 편찬한 『여한구가문초(麗韓九家文抄)』에 그의 제자 왕성순(王性淳)이 김택영의 서(序) · 기 · 설(說) · 문(文) · 행장 · 묘갈명 · 묘지명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문집.
내용

11권 1책. 신활자본. 본래는 김택영이 고려시대부터 김택영 당대까지의 문장가 9인을 정하고 그들의 문장 가운데 우아하고 바른 것 95편을 가려뽑아 『여한구가문초』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 왕성순(王性淳)이 『여한구가문초』 가운데 보탤 것은 보태고 뺄 것은 뺀 뒤에 김택영의 문장을 뽑아 이 책에 합편하여 『여한십가문초』로 개제하여 1921년 한묵림서국(翰墨林書局)에서 발행하였다.

『여한십가문초』에는 1914년에 쓴 량치차오(梁啓超) · 왕성순의 서문이 있다. 양이(楊貽) · 홍범구(洪範九)의 발(跋)과 1921년에 쓴 손정계(孫廷階)의 중간발이 있다.

『여한십가문초』 권1에 김부식(金富軾)의 표(表) 1편, 기(記) 1편, 전(傳) 4편, 권2에 이제현(李齊賢)의 서(書) 2편, 서(序) 4편, 기 2편, 권3에 장유(張維)의 서(序) 2편, 기 1편, 변(辨) 1편, 논(論) 1편, 제문 1편이 실려 있다. 권4에 이식(李植)의 차자(箚子) 1편, 서(序) 2편, 인(引) 1편, 지(志) 1편, 묘표 1편, 권5에 김창협(金昌協)의 소(疏) 1편, 서(序) 2편, 기 1편, 애사(哀辭) 1편, 제문 1편, 묘지명 2편, 신도비명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한십가문초』 권6 · 7에 박지원(朴趾源)의 의(議) 1편, 서(序) 3편, 제사(題辭) 1편, 기 4편, 논(論) 2편, 설(說) 1편, 애사 1편, 묘지명 1편, 신도비명 1편, 묘갈명 2편, 권8에 홍석주(洪奭周)의 서(書) 1편, 서(序) 4편, 변 2편, 서후(書後) 2편, 유허비 1편, 묘지명 1편이 실려 있다. 권9에 김매순(金邁淳)의 서(書) 1편, 서(序) 1편, 기 2편, 논 1편, 기타 2편, 권10에 이건창(李建昌)의 송서(送序) 3편, 기 4편, 고문(告文) 1편, 전(傳) 1편, 명(銘) 1편, 묘지명 2편, 권11에 김택영의 서(序) 3편, 기 3편, 설(說) 1편, 문(文) 1편, 행장 1편, 묘갈명 2편, 묘지명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여한십가문초』는 한문학이 지어진 전시기의 인물을 수록대상으로 한 것이다. 수록된 인물과 그들이 속하여 있던 시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고려 중기의 김부식에게서 시작하였다는 점, 둘째 이제현부터 장유와 이식에 이르는 시기가 300여 년간의 큰 공백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셋째 박지원 이후부터 저자의 시대까지는 짧은 기간동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물이 선정되었다는 점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이유는 김부식 이전에는 중국 육조 · 만당의 영향으로 변려체(騈儷體)가 일반적으로 쓰이다가 김부식에 와서야 고문에 근접한 문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고려 후기에 수용된 성리학의 영향으로 어록체(語錄體) · 주소체(注疏體)가 성행하여 고문이 크게 왜축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이유는 조선 중기 장유와 이식, 특히 김창협 이후에 고문이 널리 보급되어 창작이 활발하였다는 것이다.

『여한십가문초』는 조선 후기까지 남아 있는 산적한 문헌 가운데에 비록 김택영의 개인적인 기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정수만을 뽑아 모음으로써 잘된 문장의 전형을 제시하려 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문장을 이해하고 사적으로 조망하는 데 매우 긴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국문전용시대가 시작되면서 한문학 시대를 마감하는 단계에서 문장만을 전적으로 선록하여 이룩하였다는 점과 한문학의 유산을 총정리하였다는 데에도 부차적인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번역하여 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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