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말에 굴산사(堀山寺)를 개창하였던 승려 범일(梵日: 810~889)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삼화사사적(三和寺史蹟)』에, “삼화사(三和寺) 숲속에 3층 보탑이 있는데, 약사 삼불인 백 · 중 · 계 삼 형제가 서역에서 돌로 만든 배를 타고 두루 돌아다니다가 동해안에 이르렀다. 제일 맏이는 흑연화(黑蓮花)를 들고 지금의 삼화사로 오니 흑연대(黑蓮臺)라 하고, 둘째는 청연(靑蓮)을 들고 지금의 지상사[지향사]로 오니 청연대(靑蓮臺)라 하였으며, 막내는 금연(金蓮)을 들고 지금의 영은사로 오니 금연대(金蓮臺)라 하였다”고 하는 창건 설화가 전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891년(진성여왕 5), 혹은 892년(진성여왕 6)에 범일이 궁방산 아래 마전평에 절을 창건하여 궁방사(宮房寺)라고 한 것을 영은사의 최초 창건으로 보고 있다.
1567년(조선 명종 22)에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가 궁방사와 다소 거리가 있는 현 위치에 절을 옮겨 지어 운망사(雲望寺)라고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자 1641년(인조 19) 승려 벽봉이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영은사로 바꾸었다. 1805년(순조 5) 봄, 화재로 대웅보전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어 이듬해에 삼척부사 심공저의 지원을 받아 중건하였다. 1810년(순조 10)에는 승려 학송이 석가여래 삼존불을 봉안하였으며, 1855년(철종 6)에 승려 서암이 괘불을 조성하였다. 그 뒤 1864년(고종 1)에 심검당을 지었다. 현재 영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관리, 운영되고 있다.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팔상전, 심검당과 설선당, 삼성각, 칠성각, 요사채 등의 건물들과 괘불, 부도 및 비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산내 암자로는 대원암과 삼성암 등이 있다. 지정유산으로는,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는 삼척영은사대웅보전(三陟靈隱寺大雄寶殿)[^1]과 삼척영은사팔상전(三陟靈隱寺八相殿)[^2], 삼척 영은사 석가삼존도와 복장유물[^3], 「영은사사명당대선사진영(靈隱寺四溟堂大禪師眞影)」[^4] 등이 있다. 1986년 11월 19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삼척영은사괘불(三陟靈隱寺掛佛)」은 1885년 서암이 조성한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삼척영은사대웅보전 안에는 석가모니 삼존불 좌상과 1810년(순조 10)에 조성한 5폭의 탱화, 1941년에 주조된 신라고식(新羅古式)의 동종(銅鐘)이 있다. 삼척영은사팔상전에는 1760년(영조 36)에 제작한 세로 57.5㎝, 가로 1m의 부처 일생을 그린 탱화 8점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각에는 산신탱(山神幀) 등 3점과 창건주인 범일의 진영(眞影), 사명당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 1770년(영조 46)에 건립한 월파당선사부도(月波堂禪師浮屠) 등 3기의 부도와 1830년(순조 30)에 건립한 높이 96㎝, 너비 42㎝의 사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