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단종 3) 단종이 선위하자 어머니 혜빈양씨, 세종의 6남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등과 처벌을 받아 예안(禮安)으로 귀양을 갔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으로 가산이 적몰되고 고신(告身)을 회수 당한 후 임실(任實)로 귀양갔다. 1457년(세조 3)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되어 위리안치 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자녀로는 1녀가 있다.
영풍군은 금성대군이 혜빈양씨와 그녀의 아들들과 결탁하여 권세를 탐하고 불법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세조 즉위 직후 처벌받았지만, 단종을 양육하였던 어머니와 함께 단종을 보호하려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