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4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이 죽은 지 27년이 지난 뒤인 1609년(광해군 1)에 그의 아들 백진남(白振南, 15641618)이 편찬하고 윤안성(尹安性, 1542~1615)이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본집 3권으로 간행되었으나, 이후 그의 5세손 백수경(白受璥)이 1742년(영조 18)에 중간하였다. 중간본은 초간본 하권 끝에 있는 보유(補遺)를 보충하고 재정리하여 시와 편지글을 별집과 부록으로 추가해 4권 3책으로 더 판각하고 합쳐서 간행되었다. 또한, 1933년 그의 후손 백영규(白永圭)는 집안에서 내려온 기존 임술 초간본의 목판으로 새로이 간행하였다. 이 세 번째 간행본은 내용상의 차이점은 없으나, 서문의 위치와 차례를 바꾸어 『옥봉집』 건(乾) · 곤(坤) 2책 상, 중, 하, 별집의 4권으로 간행되었다.
책의 구성은 상, 중, 하, 별집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는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1책 상권 첫머리에는 유근(柳根), 이정구(李廷龜), 신흠(申欽)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오언절구 115제 136수, 칠언절구 231제 296수, 중권에는 오언율시 72제 79수, 칠언율시 34제 37수, 그리고 2책 하권에는 오언고시 16제 16수, 칠언고시 14제 14수, 육언 1수 총 451제 579수가 수록되어 있다. 3책 『옥봉별집』에 각 체(體)의 시가 20수, 서(書)가 28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부록에는 이이(李珥)를 필두로 20명의 만사(輓詞), 백광훈의 연보, 정호(鄭澔)가 적은 묘갈명, 끝부분에 5세손 백수경의 발문과 윤광계(尹光啓)의 「옥봉집후서」가 수록되어 있다.
백광훈의 율시와 절구에는 간결하고 고담(枯淡)한 기풍이 있어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에 비유할 만하다. 고시에는 작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사실적인 묘사와 본유적인 정감의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절구는 「 홍경사(弘慶寺)」가 대표적이고, 고시는 「 용강사(龍江詞)」와 「 달량행(達梁行)」 등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달량행」은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乙卯倭變)의 전쟁터였던 전라남도 영암 달량성에서 직접 체험한 사실을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종군하였던 양사준(楊士俊)이 지은 가사 「 남정가(南征歌)」와 대조적이다.
백광훈의 시는 절구 형식이 전체 579수 중 432수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절구보다는 율시가 형식상 더 복잡하며, 특히 칠언율시는 격식의 구애가 가장 까다로운 형태이다. 율시보다 절구로 더 많이 창작된 까닭은 저자가 형식의 구애를 가능한 한 탈피하고 자연스러움의 미를 지향하는 태도와 시형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삼당시인 가운데 제일 먼저 문집이 출간되었으며, 특히 시의 경우 가장 많은 작품이 전해진다. 백광훈은 우리말의 다양한 어조와 어감, 어기, 어투 그리고 다양한 문맥적 변주를 통해 한시 작품을 완성하고자 노력한 시인으로 16세기 문학을 주도하였다고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