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가을 풀은 앞선 왕조 절터였고[秋草前朝寺]’에서는 가을 풀 우거진 고려시대의 절 홍경사의 모습을, 승구 ‘낡은 비엔 학사님 글 남아 있구나[殘碑學士文]’에서는 최충(崔冲)의 비문이 쓸쓸히 남아 있는 모습을, 전구 ‘천년 두고 흘러가는 물만 있는 채[千年有流水]’에서는 천년 동안 말없이 흘러가는 물을, 결구 ‘석양 속에 돌아가는 구름 뿐일세[落日見歸雲]’에서는 해질 무렵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고 읊었다.
기 · 승구에서는 절의 쓸쓸하고 오래된 모습을 가을 풀과 학사비를 통하여 잘 나타냈다. 전구의 ‘천년을 말없이 흐르는 물’은 유구한 세월 속에 퇴락한 절의 모습과는 달리 변함없이 흐르는 물의 영속성을 대비시켜 노래한 것인데, 이것은 동시에 절의 옛날 흥하였던 모습과 오늘 쇠한 모습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즉, 작자는 역사의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감회와, 더 나아가 인간무상의 경지를 노래하였다. 결구의 ‘석양’ · ‘돌아가는 구름’ 은 이와 같은 사실을 형상화하는 시구이며, ‘이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작가의 삶의 경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는 『옥봉집(玉峰集)』 상에 수록되어 있으며, 『국조시산(國朝詩刪)』, 『학산초담(鶴山樵談)』, 『소화시평(小華詩評)』 등 여러 시화집에 전편이 소개되어 있다. 허균(許筠)은 『국조시산』에서 오로지 ‘절창(絶唱)’이라고만 하여 더 이상의 췌언(贅言)이 필요하지 않은 뛰어난 작품임을 말하였고,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에서 “우아하고 뛰어나 예로부터 이만한 것이 없다[雅絶之古].”라고 하였다.
이 시가 이처럼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비평적 안목을 가졌던 두 사람에 의하여 모두 극찬을 받았던 이유는, 무한한 자연의 시공간에 놓여졌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인간의 한계 의식을 절대적인 한과 슬픔으로 절감하는 감정을 질량적으로 극대화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