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계유고 ()

한문학
문헌
조선 중기의,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문집.
문헌/고서
저자
이산해(李山海)
권책수
6권 책
판본
목판본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내용 요약

『아계유고(鵝溪遺稿)』는 조선 중기의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문집이다.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저작은 병란 중에 대부분 산일되었다. 1592년 강원도 평해 유배 기간 동안 적은 작품을 위주로 모은 「기성록」을 중심으로 1, 2, 3권이 편찬되었다. 이후 4, 5, 6권은 문집을 간행할 때 후손들이 유문을 수습, 정리하여 간행한 것으로 짐작되나 정확한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문집.
서지 사항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아계유고』 목판본 서두에는 '죽피옹(竹皮翁)'이라는 주13로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서문에 의하면 이 유고의 원고는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병화에 모두 없어졌고 평해로 귀양 갔을 때 이후의 것 몇 편만을 모은 것이라 하였다.

편찬 및 간행 경위

1659년(효종 10)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의 간행 시기는 광해군(光海君) 연간으로 추정되나, 간행 경위를 알 수 있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이산해(李山海)가 직접 적은 「기성록발」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전의 저작은 병란 중에 대부분 주2, 그 이후의 저작은 저자가 직접 편찬하였다.

아들 이경전(李慶全)이 「기성록(箕城錄)」 이후 아버지의 시문을 모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1, 2권은 1592년(선조 25) 강원도 평해(平海)에 유배 간 3년 동안 지은 시편을 정리, 필사(筆寫)하여 '기성록'이란 제목을 달았으며, 3권은 평해에 있는 동안 지은 글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나머지 4, 5, 6권은 문집을 간행할 때 후손들이 이산해의 주3을 수습, 정리한 것으로 짐작된다.

1981년에 다시 『한산문헌총서(韓山文獻叢書)』 속에 수록되어 영인본으로 출판되었다.

구성과 내용

권 1~2는 '기성록'이라 하여, 1592년 강원도 평해 유배지로 가는 도중의 감회, 난중에 자녀를 잃은 애환, 유배지에서 본 주5 등을 읊은 시와 주6 등을 수록하였다.

권 3은 '기성록잡저'라고 하여 기(記)를 실었는데, 강원도 평해(平海) 일대의 촌락, 누각, 사찰에 대한 글 등이 있다.

권 4는 후집으로, '종현록(鍾峴錄)'이라 하여 시 작품을 14개의 록(錄)으로 구성하였다. 평해에서 돌아온 뒤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의 작품들로 보인다. 증별시(贈別詩), 화차운(和次韻) 등 대인수작(對人酬酌)한 작품들과 주7, 그리고 제화시(題畵詩)가 주를 이룬다.

권 5에는 「기성록」에 실리지 않은 글인 소(疏), 주8, 발(跋)이 실려 있다. 특히 「진폐차(陳弊箚)」에는 화전(火箭) 개발, 둔전(屯田) 설치, 수전(水戰) 육성 등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권 6에는 기(記)류 · 서(序)류 · 명(銘) · 주9 · 묘비명 · 묘지명 · 제문(祭文) · 부(賦) 등을 수록하였다. 주로 만년에 시전촌(枾田村)에 은거할 때의 작품들로 보인다. 기에는 송월헌(松月軒) 등의 기문이 있고, 서에는 왕명을 받고 지은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 등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이산해는 선조(宣祖) 때의 8문장(八文章)으로 평가된다. 이산해는 문(文)에 있어서는 「매월당문집서(梅月堂文集序)」를 비롯하여, 「달촌기(達村記)」 · 「황보촌기(黃保村記)」 · 「마암기(馬巖記)」 · 「해월헌기(海月軒記)」 · 「안당장전(安堂長傳)」 · 「안효자전(安孝子傳)」 · 「안주부전(安主簿傳)」 · 「월송정기(越松亭記)」 · 「망양정기(望洋亭記)」 · 「송월헌기(松月軒記)」 · 「운주사기(雲住寺記)」 · 「만초손부(滿招損賦)」 등이 유명하다. 또한 시에도 뛰어나 많은 시를 남겼다. 「감회(感懷)」 4수, 「차동파해주석실운(次東坡海州石室韻)」 · 「고종(孤蹤)」 · 「산중잡영(山中雜咏)」 6수, 「절서(節序)」 · 「만성(謾成)」 · 「해당(海棠)」 · 「견회(遣懷)」 · 「추야(秋夜)」 · 「전가잡영(田家雜咏)」 3수, 「낭음(浪吟)」 · 「월송교사(越松僑舍)」 20영(咏), 「기행」 · 「의고(擬古)」 4수 등이 시화집 등에 전한다.

이산해의 글 중에 「매월당문집서」는 김시습(金時習)의 인물을 재평가하는 데에 앞장을 선 글로, 후세에 김시습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운주사기」는 주10주11에 정면으로 도전한 글로, 그의 명석한 철학적 사상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이 밖에 그가 평해(平海)로 귀양가 있을 때에 지은 「연군시(戀君詩)」는 귀양살이를 하는 중에서도 나라와 임금을 그리워하는 주12을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문헌

원전

『아계유고(鵝溪遺稿)』
이산해, 「기성록발」
최립, 「아계공기성록발」(『간이집』 권 3, 1631)

단행본

이상하 역, 『(국역)아계유고』(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97)

논문

김지현, 「아계 이산해의 한시 연구」(『인문사회과학논문집』 31, 광운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02)
이상하, 「아계유고」(『한국문집총간:해제』, 민족문화추진위원회, 1998)
조동영, 「아계 이산해 문학의 연구」(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주석
주1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흩어져 일부가 빠져 없어지게 되다. 우리말샘

주3

생전에 남긴 글. 우리말샘

주4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의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우리말샘

주5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 우리말샘

주6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제재로 한 시. 객관적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주관적인 회고(懷古)로 그리기도 한다. 이승휴의 ≪제왕운기≫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7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주검을 산소로 옮길 때에 상여 뒤에 들고 따라간다.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 우리말샘

주9

묘갈(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에 새긴 글. 우리말샘

주10

중국 동진의 시인(365~427).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字).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귀거래사>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당나라 이후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이라 불린다. 시 외의 산문 작품에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중국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사부(辭賦).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것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내용이다. 우리말샘

주12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 우리말샘

주13

자기의 칭호를 스스로 지어 부름. 또는 그 칭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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