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세손강서원은 단종, 현종, 의소세손, 정조, 헌종 등이 왕세손에 책봉되기 전후 시기인 1448년(세종 30), 1648년(인조 26), 1751년(영조 27), 1759년(영조 35), 1829년(순조 29)에 각각 설치되었다가 왕세손이 세자가 되거나 죽으면 혁파되었는데, 좌 · 우권독은 1759년(영조 35)에 정조를 왕세손에 책봉하고 세손강서원을 설치하면서 처음 설치하였다. 영조가 1759년에 세손강서원에 좌 · 우권독(左 · 右勸讀)과 좌 · 우유선(左 · 右諭善)을 더 배치한 것은 세손교육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세손강서원의 관직이 1448년과 1648년에는 종4품의 좌익선(左翊善)과 우익선(右翊善), 종6품의 좌찬독(左贊讀)과 우찬독(右贊讀)이 각각 겸관(兼官)으로 1명씩 있었고, 1751년에는 종1품의 세손사(世孫師)와 세손부(世孫傅)가 1명씩 추가되었으며, 좌익선과 좌찬독은 실관(實官)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759년에 왕세손〔후대의 정조〕을 위해 설치한 세손강서원에는 좌 · 우유선과 좌 · 우권독을 더 배치하였다. 좌 · 우유선의 품계가 당상관 정3품에서 종2품까지로 확정됨으로써, 『 속대전』에서는 종4품 아문이었던 세손강서원이 유선의 품계에 따라 정3품 아문이 되었다. 이때 처음 설치된 권독은 학문과 덕행이 있고 사림에서 신망이 있는 자로서 의망하여 차출하되, 혹 단독 후보로 올려 관직을 주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 대전통편』에 수록된 세손강서원의 관직은 종1품의 사와 부 각 1명, 3품 당하관부터 종2품에 이르기까지 품계에 따라 관직을 제수하는 좌유선과 우유선 각 1명, 종4품의 좌익선과 우익선 각 1명, 종5품의 좌권독과 우권독 각 1명, 종6품의 좌찬독과 우찬독 각 1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익선과 우찬독은 다른 관직이 겸임하였으며, 유선과 권독은 실직(實職)이 있는 자는 겸직이 되고, 실직이 없는 자는 그것이 실직이 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에서 세손시강원과 보양청이 모두 세자시강원에 통합되면서 권독도 세자시강원 소속 관직이 되었으나, 1903년(광무 7)에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이 설치되고 일부의 소속 관직 명칭이 바뀌면서 권독은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