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걸

  • 예술·체육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시대, 「거송관폭도」를 그린 화가.
인물/전통 인물
  • 본관파평(坡平)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작품거송관폭도, 어가한면도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류승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한국서화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5일
거송관폭도 / 윤인걸 미디어 정보

거송관폭도 / 윤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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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윤인걸은 조선시대 「거송관폭도」를 그린 화가이다. 본관은 파평이며, 그 외 생애와 행적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거송관폭도」가 대표작이며, 전칭작으로 「어가한면도」도 있다.

정의

조선시대, 「거송관폭도」를 그린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그 외 가계에 대한 사항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주요 활동

활동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기록이 없어 그림을 접한 경로나 스승으로 따른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그림을 두고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가 '함윤덕(咸允德) 부류의 사람'이라고 지적한 내용이 있어, 함윤덕의 화풍과 닮은 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음은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송관폭도(距松觀瀑圖)」를 보면, 함윤덕 등 절파화풍(浙派畫風)을 구사한 조선 중기 화가들과 화풍 면에서 유사성이 보인다.

한편, 윤두서가 "국면도 좁다[局面亦窄]."라는 평가도 내렸는데, 16세기에 활동한 화가 이정처럼 크기가 작은 그림을 주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의 필법에 대해서는 "나무처럼 딱딱하다[筆法木强]."라고 했다. 윤두서는 결론적으로 "성근 것은 성글게, 빽빽한 것은 빽빽하게 그려야 하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에 근거하면, 윤인걸은 제대로 그림을 배운 화가가 아니라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들처럼 전문성을 덜 갖춘 화가였다고 볼 수 있다. 「거송관폭도」 외에 전칭작으로 「어가한면도(漁暇閑眠圖)」도 전한다.

참고문헌

  • 원전

  • - 『화단(畵斷)』

주석

  • 주1

    : 중국 명나라 말기에 유행한, 필묵이 웅건하고 거친 산수화 화풍.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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