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이며, 그 외 가계에 대한 사항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활동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기록이 없어 그림을 접한 경로나 스승으로 따른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그림을 두고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가 ' 함윤덕(咸允德) 부류의 사람'이라고 지적한 내용이 있어, 함윤덕의 화풍과 닮은 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음은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송관폭도(距松觀瀑圖)」를 보면, 함윤덕 등 주1을 구사한 조선 중기 화가들과 화풍 면에서 유사성이 보인다.
한편, 윤두서가 "국면도 좁다[局面亦窄]."라는 평가도 내렸는데, 16세기에 활동한 화가 이정처럼 크기가 작은 그림을 주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의 필법에 대해서는 "나무처럼 딱딱하다[筆法木强]."라고 했다. 윤두서는 결론적으로 "성근 것은 성글게, 빽빽한 것은 빽빽하게 그려야 하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에 근거하면, 윤인걸은 제대로 그림을 배운 화가가 아니라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들처럼 전문성을 덜 갖춘 화가였다고 볼 수 있다. 「거송관폭도」 외에 전칭작으로 「어가한면도(漁暇閑眠圖)」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