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덕후(德厚), 호는 소재(蘇齋)이다. 아버지는 이위(李煒), 조부는 이중혁(李重爀)이다. 아들 이종현(李宗賢)도 화원으로 주1
종6품 주부를 지냈고, 1763년(영조 39) 유원첨사(柔院僉使)에 제수되었다. 1744년(영조 20)의 장조헌경후가례도감(莊祖獻慶后嘉禮都監), 1753년(영조 29)의 숙빈상시봉원도감(淑嬪上諡封園都監) 등에서 활약했다. 1748년(영조 24)에는 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773년(영조 49)에는 중국 사행에도 참여했다.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1748경, 국립중앙박물관)는 부산에서 일본의 에도[江戶]에 이르는 통신사행의 노정과 화가가 접한 실경, 사행의 주요 행사를 30면으로 구성한 사행 기록 화첩이다. 당시 이성린은 오사카[大阪]에 머물며 오오카 슌보쿠[大岡春卜, 1680~1763]의 요청으로 사군자와 수성(壽星)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슌보쿠가 편찬한 『화사회요(畫史會要)』[1753]에 수록되었고, 『고화비고(古畫備考)』의 「조선서화전(朝鮮書畵傳)」에는 이성린의 작품에 쓰였던 찬문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