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51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27.4㎝, 가로 19.4㎝이다. 표제는 ‘강원도이천군읍지(江原道伊川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이천읍지(伊川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1997년에 발행된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 중 『강원도읍지』 5권에 영인 수록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에서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이 밖에 일본 동양문고 소장의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인 『관동읍지』, 그리고 『관동지(關東誌)』[^2]와 주3 등의 도지에도 이천군의 관찬 읍지가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으로 상호 보충된다.
1899년(광무 3) 읍지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읍지를 1911년경에 주4하였고, 추보한 읍지를 일제강점기에 베껴 썼다. 관안(官案) 항목의 마지막에 수록된, 1911년 이천군수로 부임한 이문하(李文夏)에 대한 기록을 통해 추보 사실을 알 수 있다. 1871년(고종 8) 편찬된 주5에 수록된 이천의 읍지와 또 다른 주6 등과는 관안 항목을 제외하면 내용이 거의 같다.
구성 항목은 강계(疆界),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원(官員), 영면(領面), 전세(田稅), 군액(軍額), 창고(倉庫), 형승(形勝), 풍속(風俗), 관량(關梁), 역원(驛院), 산천, 고적(古蹟), 궁실(宮室), 누정(樓亭), 학교, 사묘(祠廟), 산사(山祠), 사관(寺觀), 성씨(姓氏), 효열, 토산(土産), 읍사례(邑事例), 진봉(進封), 봉름(俸廩), 건천역(乾川驛), 관안(官案)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천읍지』는 1899년에 편찬된 읍지를 1911년에 추보한 것을 후사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에 필요한 지방 정보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각 고을의 읍지를 모아 필사하는 과정에서 수집되었다. 이천에서 나온 여러 관찬 읍지를 집성하여 편찬하였으므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천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