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개성 출신. 1901년에 입교, 세례 받은 뒤 순회전도활동을 전개하여 1904년 9월 서울 청녕교교회(淸寧橋敎會)의 전도사가 되었다.
1905년 9월부터 1907년 8월까지 이천(伊川)구역장, 1908년 8월까지는 개성남부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08년 미 감리 조선 선교연회가 조직되고 9월에 남 감리 선교연회가 결성되면서 매서인(買書人) 이응현(李應賢)·함주익(咸周翼)과 함께 간도 용정촌(龍井村)에 파견되어 선교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용정촌은 만주 이민동포들의 교육·종교·문화적 중심지였으며 종교계통학교와 민족주의계통의 학교에 의하여 독립운동과 신앙교육이 병행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곧 500여 명의 교인을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전개하여 나갔다.
그러나 1909년 9월에 장로회와 감리교의 양 교파가 선교구역을 협정하여 용정지역이 캐나다 장로회의 선교지역으로 결정됨에 따라 모든 선교 사업을 새로운 담당자에게 일임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철원구역장으로 시무하면서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1911년 12월에 졸업, 1912년 9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뒤 개성남부교회목사·금화구역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1924년 다시 북간도로 가서 8년 동안 관할목사로 시무하였다. 1932년 귀국하여 1933년에 동부 연회에서 은퇴하였고 강릉에서 교역자들의 목회를 후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