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나 생몰년 등이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호는 묵호(墨豪)이다.
조선 중기 문인 유계(兪棨)의 『시남집(市南集)』과 김하정(金厦挺)의 『삼매당집(三梅堂集)』은 전충효의 활동과 관련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전자에는 유계가 무안에서 1646년부터 1648년까지 현감으로 근무할 때 화사(畵師) 전충효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후자에는 호남에 묵호자(墨豪子)라는 화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장사(長沙, 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서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석정처사(石亭處士) 김한명(金漢鳴, 1651~1718)이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보산리 석정마을에 은거하며 후학을 지도했던 당시의 주1지를 그린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도 전충효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회화식(繪畫式) 지도(地圖)처럼 그려졌으며, 속세와 분리된 사대부의 유거지를 풍수지리적으로 접근해 그렸다.
이상의 사례로부터 전충효가 17세기 중후반에 주로 호남 지방에서 활동한 직업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개인 소장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간송미술관에 각각 소장된 2점의 「괴석초충도(怪石草蟲圖)」 등이 있다. 「소상팔경도」는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려졌는데, 안견파(安堅派) 화풍과 절파(浙派) 주2이 절충된 경향을 보여준다. 「괴석초충도」는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