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예보(禮甫)이다. 화원 장득만(張得萬)의 둘째 아들이다. 인동 장씨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원 가문으로, 증조할아버지 장충명(張忠明), 할아버지 장자욱(張子旭), 작은아버지 장계만(張繼萬) · 장덕만(張德萬), 동생 장사주(張師周) 등도 모두 화원이었다.
1730년에 경종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의 혼전도감(魂殿都監) 조성소에서 단청화원으로 활동했다. 1731년에는 인조 장릉의 천릉도감(遷陵都監), 1740년에는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仁元王后)에게 존호를 올리는 존숭도감(尊崇都監)에 참여했다.
초상화에 뛰어나 1744년 영조 어진(御眞) 도사(圖寫)에 주관화사(主管畵師)로 참여했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이 후학을 양성한 유봉정사(酉峰精舍) 영당(影堂)에 봉안된 변량(卞良) 필 「윤증초상」[1711]을 이모(移模)하기도 했다. 1745년에는 장득만 · 정홍래(鄭弘來) · 조창희(趙昌禧)와 함께 전년 9월에 영조가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기념하는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제작에 참여했다. 1748년 숙종 어진 모사(摸寫) 때 다시 주관화사로 뽑혀 장득만 · 진응회(秦應會) · 김희성(金喜誠) · 함세휘(咸世輝) · 정홍래 · 박태환(朴泰煥) 등과 함께 작업했다. 사천현감을 지냈으며, 평안도 등에 첨사(僉使)로 파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