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주 ()

회화
인물
조선 후기, 「영조어진」, 『기사경회첩』 등을 그린 화가.
이칭
예보(禮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0년(숙종 36)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인동(仁同)
주요 작품
영조어진, 윤증초상, 기사경회첩
주요 관직
사천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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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장경주는 조선 후기 「영조어진」, 『기사경회첩』 등을 그린 화가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화원 가문인 인동 장씨 출신으로, 아버지 역시 화원이었던 장득만이다. 각종 궁중 행사에 화원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 어진 제작 시 주관화사로 활약했다.

정의
조선 후기, 「영조어진」, 『기사경회첩』 등을 그린 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예보(禮甫)이다. 화원 장득만(張得萬)의 둘째 아들이다. 인동 장씨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원 가문으로, 증조할아버지 장충명(張忠明), 할아버지 장자욱(張子旭), 작은아버지 장계만(張繼萬) · 장덕만(張德萬), 동생 장사주(張師周) 등도 모두 화원이었다.

주요 활동

1730년에 경종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혼전도감(魂殿都監) 조성소에서 단청화원으로 활동했다. 1731년에는 인조 장릉의 천릉도감(遷陵都監), 1740년에는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仁元王后)에게 존호를 올리는 존숭도감(尊崇都監)에 참여했다.

초상화에 뛰어나 1744년 영조 어진(御眞) 도사(圖寫)에 주관화사(主管畵師)로 참여했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이 후학을 양성한 유봉정사(酉峰精舍) 영당(影堂)에 봉안된 변량(卞良) 필 「윤증초상」[1711]을 이모(移模)하기도 했다. 1745년에는 장득만 · 정홍래(鄭弘來) · 조창희(趙昌禧)와 함께 전년 9월에 영조가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기념하는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제작에 참여했다. 1748년 숙종 어진 모사(摸寫) 때 다시 주관화사로 뽑혀 장득만 · 진응회(秦應會) · 김희성(金喜誠) · 함세휘(咸世輝) · 정홍래 · 박태환(朴泰煥) 등과 함께 작업했다. 사천현감을 지냈으며, 평안도 등에 첨사(僉使)로 파견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정혜, 『영조 대의 잔치 그림』(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김양수, 「조선후기 중인집안의 활동 연구(하)」(『실학사상연구』 2, 역사실학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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