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이다. 호는 낭곡(浪谷)이고, 별호는 고봉산인(古峰散人)이다. 1808년(순조 8)에 태어났으며, 전라도 임피(臨陂, 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임피면)에 살면서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현전하는 대형 크기의 묵포도도 병풍이 1870년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60대가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묵포도도 병풍은 전수식(全樹式)으로, 제3폭과 제4폭 하단에서 시작된 포도 줄기가 양쪽으로 나뉘고, 왼쪽 넝쿨이 둥근 ‘원’과 ‘S’자 모양을 그리며 왼쪽으로 뻗어 나가는 특징을 보여준다. 일필휘지로 그려낸 포도 넝쿨에서 보이는 비백(飛白)의 서예적 필력, 포도송이와 잎사귀의 농담 대비는 수묵화 방면에 뛰어났음을 알려준다. 또한 포도 넝쿨 사이에 청설모를 그려 넣어 화면에 생동감과 경쾌함을 불어넣기도 하였다.
이러한 묵포도도는 조선 중기에 수묵사의화풍(水墨寫意畵風)으로 그린 신사임당과 황집중(黃執中)의 포도 그림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 임피와 근거리인 충청도 공주에서 18세기에 활동한 휴당(休堂) 이계호(李繼祜)의 작품과 비교하면 구도나 형식이 유사하다. 따라서 최석환의 묵포도도는 이계호의 일지형(一枝形) 포도 그림을 변형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전수식 묵포도도는 포도송이와 왕성하게 뻗어가는 넝쿨이 다산(多産)과 자손 번창을 상징하면서 19세기에 길상화의 일종으로 널리 유행하였다. 묵포도도 외에 산수화, 사군자화, 영모화 등도 그렸는데, 수준이 높지는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