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횡성(橫城: 지금의 강원도 횡성). 조영인(趙永仁)의 손자이고, 평장사 조충(趙冲)의 아들이다. 평장사 조계순(季珣)은 조숙창의 동생이다.
1231년(고종 18) 함신진(咸新鎭: 지금의 의주) 방수장군(防戍將軍)으로 몽고의 사르타이[撒禮塔]가 침입해오자 부사 전간(全幹: 全僩)과 함께 싸우지 않고 항복하고, 몽고군의 향도가 되어 삭주 선덕진(宣德鎭: 지금의 정평)도 항복하게 하였다. 조숙창은 예전 몽고군 카진[哈眞]과 형제맹약(兄弟盟約)을 체결한 조충의 아들임을 내세웠고, 몽고도 이를 선전하며 다른 성들의 항복을 권유하였다. 이후에도 조숙창은 계속 몽고군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최우 정권과 강화를 체결할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담당하였다.
몽고와 강화를 체결한 공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승진되어 몽고에 가서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살해사건을 밝히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이듬해 상장군(上將軍)에 올라 시어사(侍御史) 설신(薛愼)과 함께 칭신(稱臣)하는 표문을 올렸다. 1234년(고종 21) 서경에서 발발한 필현보(畢賢甫)의 난에 연루되어 필현보와 더불어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