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4회로 구성된 장회 소설로, 국문본 · 한문본이 있다. 한문본에는 각 회제(回題)가 한문 대구로 되었으며, 국문본의 회제는 한문본 회제의 음역에 불과하다. 또 양본을 면밀히 대조해 보면, 국문본이 한문본보다 자구의 누락이 많기 때문에 한문본이 원본일 가능성이 높다.
이본으로는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 「창선감의록(昌善感義錄)」 · 「창선감의록(創善感義錄)」 · 「감의록(感義錄)」 · 「원감록(寃感錄)」 · 「화진전(花珍傳)」 · 「화문충효록(花門忠孝錄)」 · 「화씨충효록(和氏忠孝錄)」 · 「화형옥전(花荊玉傳)」 등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대학교 도서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개인 소장의 이본도 많이 전하고 있다.
작자에 대하여 김태준(金台俊)은 『조선소설사』에서 김도수(金道洙, 16991733)를 언급하였으며, 뒤에 나온 증보판에서는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선조 졸수공(拙修公)이 어머니를 위하여 「창선감의록」과 「장승상전(張丞相傳)」을 저작하였다는 기록을 들어 조성기(趙聖期, 16381689)가 지었다는 설을 첨가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로 볼 때 이 작품의 작자로 유력한 인물은 여전히 조성기와 김도수 중 어느 한 명으로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 시기는 작자 문제와 연결되어 연구자들 사이에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으로, 어느 경우이든 두 인물의 몰년을 감안하면 창작 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늦어도 1733년을 넘어서지 않는다.
명나라 병부상서 화욱(花郁)에게는 심부인(沈夫人) · 요부인(姚夫人) · 정부인(鄭夫人) 등 부인이 셋이 있었다. 요부인은 딸 태강(太姜)을 낳고 일찍 죽었고, 정부인이 낳은 아들 진(珍)은 매우 영특하였으나, 그가 장성하기 전에 정부인이 죽는다. 심부인이 낳은 아들 춘(瑃)은 이복형제 가운데서도 가장 맏이었으나 사람됨이 용렬하였으므로 화욱은 진을 편애하여 심부인과 춘의 불만을 사게 된다.
화욱은 조정에 간신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맏아들 춘을 성혼시켰지만 딸 태강과 아들 진은 정혼만 한 채 성혼시키기 전에 죽는다. 화욱이 죽은 뒤 심부인과 화춘은 갖은 방법으로 화진과 그의 아내를 학대한다.
화진은 과거에 장원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생의 출세를 시기하던 화춘은 불량배와 결탁하여 윤리와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모함하여 귀양을 가게 하였고, 그의 아내도 누명을 씌워 내쫓는다. 그러나 화진은 물론 그의 아내도 심부인과 화춘에 대하여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화진이 유배지에서 도사인 곽공(郭公)을 만나 병서를 배우고 있을 즈음에 해적(海賊)인 서산해(徐山海)가 변방을 소란스럽게 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화진이 백의종군하여 해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운다. 화진의 능력을 인정한 조정에서는 그를 정남대원수(征南大元帥)에 봉하여 남방의 어지러움을 모두 평정하게 한다. 화진이 남방을 평정하고 개선하자, 천자는 그에게 진국공(晋國公)의 봉작을 내린다.
한편, 심부인과 화춘도 개과천선하여 착한 사람이 되었으며, 내쫓겨 종적을 감추었던 화진의 아내도 돌아와 심부인을 지성으로 섬겨 가정의 화목을 이룬다.
이 작품은 조정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쟁탈이나 변경에서 해적과 싸우는 전쟁 등의 사건이 있으나, 내용의 중심 무대는 화진의 가정이다. 결국 가장 강조된 사상은 ‘효 사상’이며 부차적으로 강조된 것은 형제간의 우애와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부귀와 연관시켜 ‘선행을 하는 이는 반드시 창성하고 악행을 하는 자는 반드시 패망한다(爲善者必昌, 爲惡者必敗).’라는 관념에 따라 작품의 결말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작품의 서두에 “인생은 남녀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로써 근본을 삼고 여타의 다른 덕행은 모두 이에서 나온다.”라고 적고 있는 부분을 통해 뒷받침된다. 또 작품의 종결에서도 “충효는 성(性)이요 사생과 화복은 명(命)이니, 운명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성만을 다할 뿐”이라 한 것도 참고된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당시의 전통 관념을 중심으로 한 도덕 소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작품은 내용에 반영된 주제가 전통 관념을 고수하기 때문에 참신성은 없다 할지라도 구성이 치밀하고 무리가 적을 뿐만 아니라, 소설적인 흥미도 많은 작품으로서 우리나라 고소설 가운데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한편,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가정제(嘉靖帝)에서 시작하여 융경제(隆慶帝) 및 만력제(萬曆帝)를 거쳐 천계제(天啓帝) 때까지 걸쳐 있다. 실제 역사에서 가정제와 만력제 재위기는 명나라가 멸망을 향해가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가정제와 만력제 재위기를 중흥(中興)의 시기로 그리고 있어 적어도 작품 내에서 명나라는 망하지 않는 나라가 된다. 이러한 설정은 명의 회복이나 청에 대한 설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조선이 명나라를 계승해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창작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