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의 한문 필사본이다. 겉표지에는 ‘기우록(奇遇錄)’이라 쓰여 있고, 작품 첫머리에는 ‘최척전(崔陟傳)’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결미에 “天啓元年辛酉二月日素翁題(천계원년신유이월일소옹제)”라 쓰고 “素翁趙緯韓號又號玄谷(소옹조위한호우호현곡)”이라는 필사자의 주가 있다. 천계 원년은 1621년에 해당하며, 호를 ‘소옹(素翁)’ 또는 '현곡(玄谷)'이라고 일컫는 조위한(趙緯韓)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서술의 기법이 가탁법(假托法)을 표방하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의 창작 동기를, 자신이 남원에 있을 때 작품의 주인공 최척이 찾아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말하며 그 사실이 없어지지 않도록 전말을 기록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술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작자의 친구인 권필(權韠)의 「주생전(周生傳)」 역시 이런 가탁의 방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창작이면서도 시의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런 기법을 구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일사문고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프랑스 기메 박물관(Musee Guimet)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문 필사본 『삼국기봉(三國奇逢)』 또한 『최척전』의 이본(異本)이다. 이 책의 구매자는 프랑스의 민속학자였던 샤를 루이 바라(Charles Louis Varat, 18421893)로 조선에 입국했던 18881889년 사이에 이 책을 구입했다.
남원에 사는 최척이 옥영(玉英)을 사랑하여 약혼을 한다. 그러나 갑자기 최척이 징발되어 전장에 나가게 되자, 옥영의 부모는 이웃의 양생(梁生)을 사위로 맞으려 한다. 이 사실을 안 최척이 돌아와 두 사람은 혼인을 하고 애정이 더욱 깊어진다. 이때 정유재란으로 남원이 함락되자 옥영은 왜병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최척은 명장 여유문(余有文)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다.
여러 해가 지난 뒤 최척은 항주의 친구 송우(宋佑)와 함께 상선을 타고 안남(安南)을 오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연히 왜국의 상선을 따라 안남에 온 아내 옥영을 만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살며 아들 몽선(夢仙)을 낳는다. 몽선은 장성하여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전한 진위경(陳偉慶)의 딸 홍도(紅桃)를 아내로 맞는다.
이듬해 최척은 명군(明軍)으로 출전하였다가 청군(淸軍)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명군의 청병으로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조선에서 출전했다가 청군의 포로가 된 맏아들 몽석(夢釋)을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부자는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고향으로 향하던 중 몽선의 장인 진위경을 만난다. 옥영 역시 몽선 · 홍도와 더불어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일가가 다시 만나 단란한 삶을 누리게 된다.
이 작품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수록된 「홍도(紅桃)」가 조위한에 의하여 소설화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과 명 · 청 간의 세력 교체를 배경으로 하여, 조선 · 일본 · 중국 · 만주를 연결하는 최척과 옥영 · 몽선 · 몽석과 홍도의 이별 · 재회의 구성법이 고전 소설의 참신한 맛을 더해 주고 있다.
『최척전』을 기점으로 이전 시기의 고전 소설에서 도외시되었던 역사성과 지리 감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만하다. 강항(姜沆)의 『간양록(看羊錄)』이나 노인(魯認)의 『금계일기(錦溪日記)』처럼, 포로가 된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한 피로 문학(被虜文學)이라는 새 장르의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도 있다.
한편, 이 작품에는 가족 회복에 대한 이상이 드러나 있다. 이는 이미 전란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억지로 과거의 상태로 봉합하려한 작가의 가족 회복 지향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