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군[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출신이다. 전주북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전주에 있던 서양화 교육 기관인 동광미술연구소에서 서양화의 기초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광복 후에 전매청에서 근무하며 동광미술회, 녹광회, 신상회의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60년경에 직장을 사직하고 서울에 정착하였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개인전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목우회(木友會)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제10회 국전에서 「고궁」으로 입선한 이후 9번에 걸쳐 수상하였고,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에는 주1 작가 단체인 목우회의 공모전에서 「비원의 승재정」으로 수상한 후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수상작에서 알 수 있듯이 천칠봉은 풍경화, 그중에서도 창덕궁을 비롯한 고궁 풍경을 주력 분야로 하였다. 1960~1970년대에 궁원을 소재로 한 풍경을 주로 그린 화가들을 이른바 ‘비원파(祕苑派)’라 하는데, 천칠봉, 손응성, 변시지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수유리에 살았던 천칠봉에게 북한산 일대 풍경은 또 하나의 중요한 회화 대상이었다. 인적이 없는 고요한 계곡과 산을 대상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성실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2021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천칠봉, 풍경에 스미다'라는 회고전을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