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투각 칠보문뚜껑 향로는 투각·첩화·상형·상감 등 각종 기법을 통해 제작된 12세기 고려 시대 향로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향로는 뚜껑·몸체·받침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투각기법으로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칠보문을 장식하고 있다. 향로 몸체에는 여러 장의 국화잎이 감싸고 있는 꽃봉오리 모양이다. 섬세한 잎맥을 첩화기법으로 표현하였다. 굽다리 부분에는 향로를 등에 얹고 있는 듯한 모습의 토끼 세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이 향로는 고려 전성기 비색청자의 조형적 우수성과 비색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 중기 청자는 고려왕조의 내적인 성장 위에 북송과의 국교가 다시 열리고 요(遼)와는 서로 실리를 취하는 가운데, 문화가 융성해가는 시기에 제작되었다. 12세기 중엽 무신란이 일어나지만 요업은 비색청자와 상감청자에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시 고려청자와 관련한 문헌기록으로 송(宋)나라 태평노인의 『수중금(袖中錦)』에 기록된 “고려비색 천하제일”이라는 내용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당시 고려청자의 높은 수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산예출향(狻猊出香)”이라는 특수한 기형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고려 중기는 특수기형으로 상형 청자의 아름다움을 발휘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증명하듯 다양한 장식기법으로 표현된 청자투각칠보문뚜껑향로는 고려 12세기 청자의 정수로 불릴만하다.
청자 투각칠보문뚜껑향로는 음각 · 양각 · 투각 · 상감 · 첩화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절묘하게 적용하여 조화와 균형을 두루 갖추었다. 향로는 뚜껑, 몸체, 받침 등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에 서로 다른 장식기법을 사용하여 세부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뚜껑 위에는 다복(多福) · 다수(多壽) ·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전보(錢寶)를 투각 장식하여 둥그렇게 올렸고, 이를 통해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하였다.
향로의 몸체는 타원형으로 한 송이 커다란 국화를 연상케 하며, 여러 장의 국화잎이 감싸고 있는 꽃봉오리 모양의 상단 부분과 이를 여섯 개의 잎이 받치고 있는 하단 부분으로 구분되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면을 감싸고 있는 국화 잎들은 앞쪽 중앙이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고 좌우측 가장자리가 톱니모양으로 만들어져 사실적이며 각각의 잎에 여러 개의 수직선으로 잎맥을 나타내고 있다.
몸체의 하단에 배치된 여섯 개의 잎은 끝이 위로 들린 채 반전되어 전체에 변화를 주기도 하며 경쾌한 느낌을 준다. 또한 각각의 잎은 각도를 잘 분배한 균등한 모습으로 커다란 몸체와 연결되어 아래쪽 받침으로 무게를 분산시키는 기능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
향로의 받침은 지름이 큰 원반형으로 뚜껑의 받침과 크기만 다를 뿐 형태와 꽃모양의 장식을 유사하게 만들어 통일성과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상단에는 몸체 하단의 잎과 연결되어 향로를 받치고 있으며 하단에는 세 마리의 토끼를 배치하여 향로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크기는 작지만 토끼의 귀나 얼굴, 몸체 등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상형청자의 진수를 보여준다. 토끼는 불교의 본생담 설화와 관련이 있어 불교 용구인 향로를 이루는 한 축으로 몸체의 연판문과 조화를 이룬다.
이 향로는 고려 전성기 비색청자의 조형적 우수성과 비색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향로의 뚜껑과 받침을 뒤집어 보면 각각 안 바닥 세 곳과 네 곳에 각각 규석을 잘게 부수어 받침재료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규석받침은 전라남도 강진과 부안의 청자가마에서 고려 11∼13세기에 만들어진 최고의 청자 중 대접이나 접시, 완과같은 크기가 작은 종류를 제작할 때 쓰이던 받침재료이다.
또한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와 유사한 파편이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발견되므로 이곳이 제작지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전세 유물 중에서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에 유사한 청자향로가 소장되어 있어 다양한 유물이 개경을 중심으로 소비되었으며 이 향로 역시 지배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