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국사로 책봉된 선승.
가계 및 인적사항
철산소경이 귀국한 후 충감은 용천사(龍泉寺)에서 주석(駐錫)하면서 선문청규(禪門淸規)를 실행하였다. 이후 그는 15년 간 선원사의 주지로 지냈다.
1336년에는 충숙왕의 명을 받아 보광사(普光寺)로 들어갔으며 4년 뒤 입적하게 된다.
보광선사 비문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贊)』에 수록되어 있고 해당 비는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광사지에서는 14세기 말에 해당되는 복발형 목제 사리병(舍利甁)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라마 불교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인근 공주 마독사 오층석탑도 라마 불교 계통의 석탑이다. 부여와 공주 지역에 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확인되는 것을 원명국사 충감의 선풍의 영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원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조선총독부, 1919)
논문
- 이경복, 「技餘 보광사지와 圓明國師 충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6)
- 조명제, 「고려후기 몽산법어의 수용과 간화선의 전개」 (보조사상연구원, 199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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