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지금의 [충주시]에서 편찬하였다.
1책 17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5.7㎝, 가로 19㎝이다. 표제는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이고, 별도의 내제는 없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책의 첫머리에 1870년 9월 충주목사 조병로가 쓴 읍지 서문이 실려 있지만, 이 읍지에 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호서읍지(湖西邑誌)』의 읍지서(邑誌序)와 서문이 같다.
수록 항목은 읍지서와 진관(鎭管), 강계(疆界)로 시작하여, 건치연혁(建置 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방리(坊里), 인호(人戶), 도로, 교량(橋梁), 형승(形勝), 성지(城池), 방지(方池),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능침(陵寢),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조적(糶糴), 토산(土産), 인물, 진보(鎭堡), 고적(古跡), 교원(校院), 사찰, 봉수(烽燧), 관애(關阨), 목장(牧場), 역원(驛院), 군액(軍額), 결총(結摠), 누대제영(樓臺題詠), 축성기(築城記) 순으로 구성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면리 구성과 각 면별로 소속된 ‘이(里)’의 이름, 위치를 기록하였다. 인호 항목에는 기준연도를 무술년[1898년]으로 밝히고, 총호수와 남녀별 인구수를 적어 놓았다. 산천 항목에는 경종(景宗)의 태실(胎室)이 있는 왕심산태봉(旺心山胎峯), 달천진(達川津) 등 산과 나루들을 기록하였다. 창고 항목에서는 가흥창(可興倉)이 확인된다.
인물 항목에는 충주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성명과 간략한 인적 사항, 주요 행적 등을 기록하였다. 우거인(寓居人)으로서 가야국 출신의 신라시대 음악가 우륵(于勒)을 적고, 이와 관련해 고적 항목에서 탄금대(彈琴臺)를 소개하고 있다. 봉수와 역원 항목에서는 유지와 폐치 상태를 기록하였다. 누대제영 항목에는 충주 지역의 누대와 관련한 시문을 수록하였다. 끝부분에는 1870년 윤 10월 충주목사 조병로가 쓴 「축성기(築城記)」를 수록하였다.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는 1899년 대한제국기의 읍지상송령에 따라 중앙 정부에 보고한 읍지의 특징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와 체재와 내용 면에서 비슷한데, 사창(社倉)과 진공(進貢), 봉름(俸廩) 항목과 읍사례, 역원사례가 빠진 것에서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