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관문학 ()

목차
관련 정보
패관잡기
패관잡기
한문학
개념
패관들이 모아 기록한 가설항담에 창의성과 윤색이 가미된 일종의 산문적인 문학양식.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패관문학은 패관들이 모아 기록한 가설항담에 창의성과 윤색이 가미된 일종의 산문적인 문학양식이다. 패관은 중국에서 각 고을의 풍속을 알기 위해 둔 임시직 사관으로서 그 소임은 주로 시사·민간전설·신화를 채집하는 일이었다. 패관문학에 대한 정의는 아직 불분명한데 대체로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설화문학, 둘째, 설화문학과 소설문학을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문학형식, 셋째, 고려 후기의 가전체작품, 넷째, 실사적인 잡록 또는 견문잡지를 총집한 수필문학, 다섯째, 고전소설, 여섯째, 고려 중엽에 등장한 『파한집』·『보한집』 등의 시화문학 등이다.

목차
정의
패관들이 모아 기록한 가설항담에 창의성과 윤색이 가미된 일종의 산문적인 문학양식.
내용

패관문학이라는 말이 국문학사와 소설사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김태준(金台俊)『조선소설사(朝鮮小說史)』가 처음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패관문학보다 패관소설(稗官小說) · 패사(稗史) · 패사소설(稗史小說) · 패관기서(稗官奇書) 등이 거의 같은 개념으로 널리 쓰였다.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에서 고려시대 문학에서 『파한집』 · 『보한집』 · 『백운소설』 · 『역옹패설(櫟翁稗說)』과 같은 시화(詩話) · 잡록(雜錄) 등의 새로운 산문형식의 대두를 설명면서, 이러한 책들이 패관문학의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고만 하였을 뿐이다. 그는 패관문학을 특정한 문학형식으로 지칭하지는 않았다.

김태준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원래 여인(麗人)의 문학적 저술이 고려의 전반에 있어서는 주자학의 방성(方盛)하여짐으로 인하여 극히 적으며 약간의 패관문학도 고려의 중엽에 있어서 고려문화의 황금기를 일구어놓은 고종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발단되었다. (중략) 인제 패관문학을 포함하였다고 볼 수 있는 서목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면”이라고 하여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 최자(崔滋)의 『보한집』,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을 열거하고 있다.

『조선소설사』 이후에 대부분의 소설사에서는 패관문학에 대한 일정한 개념을 규정하는 일도 없이 사용해 왔다. 심지어는 동일저서 속에서도 서로 다른 문학형식의 호칭으로 이를 사용해 왔다.

패관문학에 대한 의미를 대략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설화문학, ② 설화문학과 소설문학을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문학형식, ③ 고려 후기의 가전체작품, ④ 실사적(實事的)인 잡록 또는 견문잡지(見聞雜識)를 총집한 수필문학, ⑤ 고전소설, ⑥ 고려 중엽에 등장한 『파한집』 · 『보한집』 등의 시화문학 등이다.

다기(多岐)한 개념으로 파악되어 온 김태준의 ‘패관문학’의 의미는 그가 패관문학을 포함하였다고 볼 수 있는 서목이라고 한 책들의 내용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시화 · 시평(詩評) · 서화평(書畫評)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밖에 이문(異聞) · 기사(奇事) · 인물평과 같은 잡기(雜記)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패관문학의 개념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패관 · 패사 등의 자의(字義)와 소유래(所由來)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패관이라는 두 글자가 문학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한대(漢代)의 도서목록인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서 비롯한다. “소설류에 속하는 것들은 대개 패관의 손에서 나왔으며 그것은 가담항어 도청도설로써 만들어진 것이다(小說家者流 蓋出於稗官 街談巷語 道聽塗說者之所造也).”가 그것이다.

‘패관’의 패(稗)는 본래 속(粟)의 일종이지만 그 입자가 극히 작다. 그러므로 ‘패’는 소(小)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패관은 곧 소관(小官)을 뜻한다.

그리고 그 신분은 여항(閭巷)의 풍속을 알기 위하여 둔 임시직 사관(史官)이다. 그 소임은 주로 시사(時事) · 민간전설 · 신화를 채집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시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패관은 중국소설사에서 소설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민간전설 · 신화 · 사화(史話) · 시사 · 우언(寓言)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로부터 소설가를 가리켜 패관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소설을 패사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소설은 반고가 그의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 주(注)에서 “혹은 고인에 의탁하고 혹은 고사를 기록한 것으로 사람에 의탁한 것은 자(子)에 가까우면서도 천박하고 사(事)를 기록한 것은 사(史)에 가까우면서도 황당무근한 것이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허구적인 근대소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반고의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 이후에 『구당서(舊唐書)』「경적지(經籍志)」, 『신당서』「예문지」, 『송사(宋史)』 · 『원사(元史)』 · 『명사(明史)』 등의 예문지에서 소설의 분류를 다기하게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모두 당서(唐書)의 그것과 대차가 없다. 그래서 소설가 또는 잡가(雜家)에서 처리하는 정도를 넘지 못하였다.

명대에 와서 호응린(胡應麟)이 그의 『산방필총(山房筆叢)』 중에서 소설은 지괴(志怪) · 전기(傳奇) · 잡록(雜錄) · 총담(叢談) · 변정(辨訂) · 잠규(箴規) 등으로 분류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용과 체재를 혼동한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청대(淸代)에 와서 기윤(紀昀)이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소설을 서술잡사(敍述雜史) · 기록이문(記錄異聞) · 철편쇄어(綴編鎖語) 등으로 3분하였다. 그래서 그 내포외연의 범위가 윤곽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패관문학은 전통적으로 널리 쓰여온 패관소설 · 패사와 다를 것이 없으며 그 개념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참고문헌

『중국소설적기원급기연변(中國小說的起源及其演變)』(호회탐)
『소설찬요(小說纂要)』(蔣祖怡)
「패관문학에 대하여」(민병수, 『고전문학연구』 1집, 1971)
관련 미디어 (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