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죽지사」는 조선 후기에 장지완이 지은 악부시이다. 칠언절구 85수로 구성되어 있다. 4,000년 전의 단군 시절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변천을 노래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평양의 기생들에 대한 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칠언절구 85수로 되어 있다. 한문 필사본(筆寫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韓國學中央硏究院)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장지완(張之琬)의 문집(文集) 『침우당집(枕雨堂集)』에는 없고 저자가 생전에 간행한 『비연상초(斐然箱抄)』에 20수가 실려 있는데, 이 20수는 「평양죽지사」의 일부를 선별한 것이다. 장서각 소장본 「평양죽지사」는 모두 85수로 이루어져 있다.
몇몇 해제(解題)에서 75수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장서각 소장본을 영인(影印) 출판한 『이조후기여항문학총서』 수록본에서 작품 일부를 누락시켜 75수만을 수록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죽지사(竹枝詞)」는 지방의 풍속을 읊거나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칠언절구의 연작시(連作詩)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이와 같은 시가 많이 지어졌다. 그때는 소재를 우리의 것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한창이었고, 서사화(敍事化)의 풍조가 일어났다.
「평양죽지사」의 내용은 4,000년 전의 단군 시절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변천을 노래하였다. 기자궁(箕子宮)과 기자묘(箕子墓), 정전(井田)과 동명왕(東明王)의 유적,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사당(祠堂) 충무사(忠武祠) 등을 소재로 평양에 얽힌 역사를 다루고 있다.
「평양죽지사」는 대동강과 능라도(綾羅島)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모란봉(牡丹峰) 주위의 정자들을 노래하면서, 그 정자에 얽힌 시인들의 풍류와 함께 지금은 없어진 정자도 여러 군데 소개하였다. 또 이곳을 거쳐 간 중국 사신들의 시를 인용하여 평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평양죽지사」에는 김황원(金黃元)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황원은 부벽루(浮碧樓)에 걸린 현판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떼어 내어 불태웠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가장 훌륭한 시를 지어 보려 하였다. 그러나 하루 종일 시름 하다가 “장성일면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이라는 두 구절만 겨우 지었다. 그래서 그는 석양 무렵에 통곡하며 다락에서 내려왔다.
「평양죽지사」에는 평양의 기생들에 대한 시가 많다.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과 얽힌 사연이나 그들이 불렀던 노래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기생들의 공동묘지인 선연동(嬋娟洞)이나 임진왜란 때에 왜군 장수를 죽이는 공을 세웠던 계월향(桂月香)의 사당 의열사(義烈祠)도 다루었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시에 자세한 주가 덧붙어 있다. 따라서 「평양죽지사」는 평양에 대한 한 권의 풍물지(風物誌) 성격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