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자는 여정(汝正)이고, 호는 연객(烟客) · 초선(草禪) · 구도(舊濤)이다. 진사 허규(許逵)의 아들이며, 11세에 큰아버지 허주(許週)의 양자로 들어갔다.
소북계(小北系)였던 허필의 가문은 이인좌의 난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몰락하였다. 그 때문에 허필은 1735년 진사시에 급제하고도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고, 시서화에 몰두하여 삼절(三絶)로 불렸다. 1744년에 권항언(權恒彦) · 권사언(權師彦) · 권조언(權朝彦) 등과 금강산 및 관동팔경을 여행하였는데, 리움미술관 소장 「총석정도(叢石亭圖)」가 당시의 그림으로 보인다.
허필은 일생 동안 같은 소북계 문인화가인 강세황(姜世晃)과 서화로 교유하였다. 허필이 강세황의 그림에 평을 적은 『연객평화첩(烟客評畵帖)』은 강세황의 작품에 다른 사람이 화평을 남긴 유일한 예이다. 허필은 안산에 머물렀던 강세황을 통해 이용휴(李用休) · 유경종(柳慶種) 등 안산 남인(南人) 문인들과 교유하며 조선과 중국의 여러 문예 사조에 접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휴가 지은 허필의 묘지명(墓誌銘)에는 허필의 청빈하고 소탈한 성격과 문학과 예술품을 사랑하는 태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허필은 전서와 예서를 잘 썼으며, 남종문인화풍의 산수 · 영모 · 화조화 등을 남겼다. 그의 그림으로 20여 점 내외의 회화가 전하고 있는데, 「선면금강산도(扇面金剛山圖)」[고려대학교 박물관], 「헐성루망만이천봉도(歇惺樓望萬二千峯圖)」[1764], 「묘길상도(妙吉祥圖)」[1759, 국립중앙박물관] 등 실경산수화가 두드러진 비중을 지닌다. 허필의 금강산도는 남종화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의적(寫意的)인 실경산수화풍을 선보였다.
18세기에 활동한 소북 문인들의 시집 『오대가시(五大家詩)』에 허필의 『연객시고(烟客詩稿)』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