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천수」는 고려시대부터 당악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어 온 당악이다. 고려시대에는 「헌선도」 정재와 「연화대」 정재에 ‘일난풍화’사와 ‘낭원인한’사와 함께 4종의 「헌천수」계 악곡이 쓰였으나, 조선 전기에 2종으로 재정리되었고, 그 중 「헌천수【만】」은 「하성명」 정재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였다. 「헌천수」계 악곡들은 고려 전래의 당악정재와 함께 조선 후기까지 연주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연주되고 있는 「헌천수」는 삼현육각 편성의 무용음악인 「염불타령」의 아명일 뿐, 고려 전래의 당악과는 무관하다.
「헌천수(獻天壽)」는 고려시대부터 「헌선도(獻仙桃)」 정재와 「연화대(蓮花臺)」 정재에서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어 온 당악이다. 「헌선도」 정재에서는 「헌천수【만】」에 맞춰 ‘일난풍화(日暖風和)’사를, 「헌천수령【최자】)」에 맞춰 ‘낭원인한(閬苑人閒)’사를 각각 창하였다. 반면, 「연화대」 정재에서는 기악반주로 「헌천수령【만】」이 쓰였고, 「헌천수령」에 맞추어 역시 ‘일난풍화’사를 창하였다. ‘일난풍화’사는 북송대의 사작(詞作)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가사 중 ‘등석(燈夕)을 맞아’라는 내용으로 보아 주1을 기념하는 행사와 관련 있는 사악(詞樂)으로 보인다. 그 가사는 총 47자로 미전사에 해당하는 전단과 미후사에 해당하는 후단을 갖춘 쌍조(雙調)로서 전단은 4구(句) 4평운(平韻), 후단은 5구 3평운으로 이루어졌다. 전단의 구식(句式)은 ‘7. 4. 7. 5.’[4구 23자]이고, 후단은 ‘7. 4. 7. 3, 3.’[5구 24자]이다.
전단
일난풍화춘경지. 시태평시(日暖風和春更遲. 是太平時)[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운데 봄날이 더욱 느리니, 이것이 태평시절이네]
仄仄平平平仄平. 仄仄平平.
아종봉도정용자. 내강하단지(我從蓬島整容姿. 來降賀丹墀)[저희들은 봉래산에서 용모를 가다듬고 내려와서 궁궐에 하례를 드립니다]
仄平平仄仄平平. 平仄仄平平.
후단
행봉등석진가회. 희근천위(幸逢燈夕眞佳會. 喜近天威)[다행히 등석을 맞아 참으로 좋은 모임이니, 천위를 가까이 할 수 있어 기쁩니다]
仄平平仄平平仄, 仄仄平平.
신선수산원무기. 헌군수, 만천사(神仙壽算遠無期. 獻君壽, 萬千斯)[신선의 수명은 길어서 기한이 없으니, 임금님께 천만 년의 장수를 바치옵니다]
平平仄仄仄平平. 仄平仄, 仄平平.
각각 다른 두 정재에서 동일한 사를 「헌천수【만】」과 「헌천수령」에 맞추어 다르게 부른 점은 독특하다. 특히 ‘일난풍화’사는 글자 수가 47자에 불과하여 ‘령(令)’으로 부르기에는 적합하지만, ‘만’으로 부르기에는 악곡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한편, 「헌선도」 정재에서 「헌천수령【최자】」에 맞춰 부른 ‘낭원인한’사 역시 북송대의 사작(詞作)으로 작자는 미상이다. 「연화대」 정재에서는 이 ‘낭원인한’사를 「최자령(嗺子令)」에 맞춰 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가사는 총 52자로 전단과 후단을 갖춘 쌍조로서 전단 · 후단은 각각 4구 3평운으로 이루어졌다. 전단의 구식(句式)은 ‘7. 5. 7. 6.’[4구 25자]이고, 후단은 ‘7. 7[3、4]. 7. 6.’[4구 27자]이다. 이 사는 오직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만 전한다.
전단
낭원인한수격요, 문성덕미고(閬苑人閒雖隔遙, 聞聖德彌高)[낭원[^3]은 비록 인간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성덕이 더욱 높으심이 들리옵니다]
仄仄平平平仄平, 平仄仄平平.
서리선경하운소. 내헌천세영도(西離仙境下雲霄. 來獻千歲靈桃)[서쪽에서 선경을 떠나 하늘을 내려와 천 년을 살 수 있는 영도를 바치옵니다]
平平平仄仄平平. 仄平仄平平平.
후단
상축황령제천구. 유무도、하하성조(上祝皇齡齊天久. 猶舞蹈、賀賀聖朝)[위로 임금님의 연세가 하늘과 가지런하기를 빌고, 또한 춤을 추어 성조에 하례드립니다]
仄仄平平平平仄, 平仄仄、仄仄仄平.
제항교주사방래. 단공영보종조(梯航交湊四方來. 端拱永保宗祧)[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 만큼 나라가 번성하니, 임금께서는 태평성대를 이루어 나라를 길이 보전하실 것입니다]
平平平仄仄平平. 平仄仄仄平平.
고려시대 두 정재에 쓰인 「헌천수」계의 악곡은 「헌천수【만】」, 「헌천수령【최자】」, 「헌천수령【만】」, 「헌천수령」 등으로 다양하다. 「헌천수」와 「헌천수령」에 세주로 ‘만’이 표시되었고, 「헌천수령」은 또 세주로 ‘만’과 ‘최자’가 표시된 것과 아무 표시가 없는 「헌천수령」등 3종으로 구별된다. 이 곡의 조(調)[사 작품을 ‘조’라 함] 이름은 「헌천수」 혹은 「헌천수만」인데, 「헌천수령」에 ‘만’이나 ‘최자’가 붙은 점은 특이하다.
더구나 「헌선도」 정재에서 「헌천수령【최자】」에 맞춰 창하는 ‘낭원인한’사를 「연화대」 정재에서는 「최자령」에 맞춰 창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자에서는 ‘최자’가 세주로 표시되었고, 후자에서는 곡 이름으로 명시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최자’는 당송 주2 대곡(大曲)의 한 장절이고, 곡이름에 ‘령’이 붙은 것은 송대로 접어들어 만사(慢詞)가 성행하면서 ‘만’에 대한 대비로 쓰이게 되었다.
당 · 오대 시기에도 ‘만사’가 있긴 했지만, 그 시기에는 아직 ‘만’ · ‘령’의 표시가 없이 사패 이름[음악적 측면]이나 조(調) 이름[가사의 측면에서 사를 조라 칭함]이 제목으로 쓰였을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최자’는 당악정재인 「헌선도」나 「연화대」가 가무대곡에 속하기 때문에 대곡의 ‘최(嗺)’ 부분을 취하여 ‘자(子)’를 붙인 것이고, 「헌천수령」의 ‘령’은 만사(慢詞)가 대두된 뒤로 기존의 「헌천수」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자(子)’는 ‘작다’의 의미로 대곡의 ‘부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헌천수」는 조선시대로 접어들어서도 꾸준히 전승되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1447년(세종 29)에는 평상시에 사용하는 속악[시용속악(時用俗樂)]을 정한 뒤 악보로 남겼는데, 그 중에 「헌천수」가 포함되었다. 이후 1471년(성종 2)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당악의 취재 곡목으로 「헌천수」와 「헌천수최자」가 포함되어 있다.
성종대의 『악학궤범(樂學軌範)』 중 ‘시용당악정재도의(時用唐樂呈才圖儀)’에 수록된 「헌선도」 정재에서는 「헌천수【만】」과 「헌천수최자」에 맞춰 각각 ‘일난풍화’사와 ‘낭원인한’사를 창하였으며, 「연화대」 정재에서는 「헌천수【만】」이 기악 반주곡으로만 쓰였다. 사조(詞調)의 명칭도 ‘일난풍화’사는 ‘헌천수【만】’사로, ‘낭원인한’사는 ‘헌천수최자’사로 곡이름과 같게 바뀌었다.
이와 같이「헌천수【만】」 · 「헌천수령【최자】」 · 「헌천수령【만】」 · 「헌천수령」 등 고려시대의 복잡했던 「헌천수」계의 악곡들은 조선 전기에 「헌천수」 혹은 「헌천수【만】」, 「헌천수최자」 두 종류로 재정리되는 변화가 있었다. 두 곡 중 「헌천수【만】」은 「헌선도」 정재와 「연화대」 정재 외에 조선 전기에 창제된 「하성명(賀聖明)」 정재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였다.
「헌선도」 정재와 「연화대」 정재가 조선 후기까지 조선시대 내내 연희되어 온 점에 비추어 두 곡의 「헌천수」계 악곡들 역시 꾸준히 연주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1829년(순조 29) 경복궁 자경전(景福宮慈慶殿)의 내진찬에서 연주된 「헌천수지곡」이 「헌천수」계의 악곡인지, 「헌천수」계의 악곡이라면 그것이 「헌천수【만】」인지, 「헌천수최자」인지는 불확실하다.
한편,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고 있는 「헌천수」는 「염불타령」의 아명(雅名)으로서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되는 무용음악의 일종일 뿐, 고려 전래의 당악과는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