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1운동 이후인 1919년 11월 2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과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안교일(安敎一), 김교선(金敎善), 신봉균(申鳳均), 신상균(申相均), 이정방(李鼎邦) 등이 서울 종로5정목(鐘路5丁目) 김교선의 집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혈복단은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혈복단은 경기도 수원에 지부를 두었다. 수원혈복단(水原血復團)은 이득수와 박선태가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수원혈복단은 3 · 1운동 이후 전국의 지방에서 조직된 최초의 학생 비밀결사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단체였다.
1910년대에 조직된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계승한 혈복단은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배포와 대한적십자회의 가입 등을 추진하였다. 또한 수원 지방에 있는 기타 청년단체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하였다.
박선태와 이득수는 1920년 6월 7일 혈복단을 구국민단(救國民團)으로 개칭하고, 각각 단장과 부단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