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애국단 ()

근대사
단체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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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신현구·권인채 등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본부를 결성하고 동시에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에 지방 조직을 확보하였다. 강원도에서 결성한 철원군단은 강원도단으로 승격되었고, 철원애국단이라고도 불렀다. 이후 강릉군단, 양양군단, 평창군단 등을 조직하였다. 특히 평창군단은 자생적 농민조직인 창일계(昌一契)라는 별동조직을 구성해 대중적 조직기반을 확보하였다. 설립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 구실을 하며 군자금모금·통신연락·선전임무 등을 수행하였다.

정의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개설

1919년 5월 신현구(申鉉九) · 권인채(權仁采) 등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연원 및 변천

본부의 구성원은 단장 신현구, 재무총장 김순호(金順皓), 재무감독 문봉의(文鳳儀), 그 밖에 권인채 · 안황(安滉) · 김영식(金永植) · 서병철(徐丙轍) · 김상덕(金相德, 일명 金載根) · 이시우(李時雨) · 안교일(安敎一) · 김영철(金永喆) 등이었다. 신현창(申鉉彰)은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파견되어 연락을 담당하였다.

본부의 결성과 동시에 지방조직에 착수하였다. 전라도 지역은 같은 해 5월 김순호의 지도로 김영식이 주관해 고창 일대에 기초 조직을 확보하였다. 강원도 지역은 같은 해 8월 권인채 · 김상덕에 의해 철원군단(鐵原郡團)이 결성되었다.

임원은 군단장 이봉하(李鳳夏), 서무과장 강대려(姜大呂), 재무과장 김완호(金完鎬), 통신과장 박연서(朴淵瑞), 학무과장 박건병(朴健秉), 외교부원 이용우(李用雨) · 김철회(金喆會) · 오세덕(吳世德)이었다.

철원군단은 곧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승격되고, 군단장은 도단장(道團長)으로 과장은 국장으로 역시 승격되어 도단체계를 갖추었는데, 강원도단을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이라고도 불렀다.

강원도단은 조종대(趙鍾大)에게 군단위 조직에 착수하게 하여, 같은 해 9월 엄성훈(嚴成勳)을 단장으로 하는 강릉군단을, 10월 김영학(金永鶴)을 단장으로 하는 양양군단을 조직하였다.

이어 평창군단이 조직되어 이근세(李根世)가 단장으로 활약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식계(利殖契)를 위장한 자생적 농민조직인 창일계(昌一契)라는 별동조직을 구성해 대중적 조직기반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충청도 지역은 본부의 문봉의가 이시우를 파견해 같은 해 11월 청양군단을 조직하였다. 충청남도단장은 유경재(兪暻在), 청양군단장은 유환방(兪煥邦)이었고, 본부에 대한 운영자금 지원활동을 주로 담당하였다. 한편, 본부의 서병철도 서산 일대에 조직을 확충시켜나갔다.

기능과 역할

설립 이후 이 단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결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 조직, 즉 연통제 구실을 해 군자금 모금 · 통신연락 · 선전임무 등을 수행하였다.

만세시위도 주도해, 1919년 10월 10일 철원에서 강원도단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회를 열고 독립만세를 불렀는데, 철원군민들이 철시하고 시위에 호응하였다. 같은 해 11월 28일 안국동에서 대동단(大同團)과 연합해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식민기관에 종사하는 조선인을 일제히 퇴직시켜 일제의 행정기능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로 강원도단이 조종대가 중심이 되어 조선인 관리의 퇴직동맹결성을 추진했으나, 1920년 1월 조종대가 일본경찰에 체포되면서 무산되었다.

1919년 11월 본부단장 신현구가 일본경찰에 붙잡혔으나 조직이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종대가 붙잡힌 뒤 강원도단조직이 발각되었고, 이어 충청도단 · 전라도단 조직도 노출되어 자연히 해체되고 말았다.

신현구가 붙잡혀 본부의 활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본부의 문봉의 · 안교일이 같은 해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한 김태원(金泰源) · 김교선(金敎善) · 신봉균(申鳳均)과 함께 조직한 혈복단(血復團)에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태백항일사(太白抗日史)』(조동걸, 강원일보사, 1966)
「대한독립애국단연구(大韓獨立愛國團硏究)」(장석흥, 『한국독립운동사연구』 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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