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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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허균(許筠)이 힘이 있는 백성인 호민(豪民)을 두고 지은 논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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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 허균(許筠)이 힘이 있는 백성인 호민(豪民)을 두고 지은 논설문.
내용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은 논설문으로, 그의 민본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실려 있다.

「호민론」에서 작자는 백성을 항민(恒民) · 원민(怨民) · 호민(豪民)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호민은 고대사회에서 촌락에 사는 힘이 있는 백성을 가리키던 말이다.

그에 의하면, 항민은 일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백성들로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 없이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면서 얽매인 채 사는 사람들이다.

원민은 수탈당하는 계급이라는 점에서 항민과 마찬가지이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윗사람을 탓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이들은 원망하는 데에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항민과 원민은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못 된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호민이다. 호민은 남모르게 딴마음을 품고 틈만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들이다. 호민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저절로 모여들고, 항민들도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서게 된다.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陳勝) · 오광(吳廣) 때문이고, 한(漢)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황건적(黃巾賊)이 원인이었다. 당(唐)나라도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틈을 타서 난을 꾸몄다. 끝내 이 때문에 이들의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들은 모두 호민들로서 학정의 틈을 노린 것이다.

우리 조선의 경우를 보면 백성이 내는 세금의 대부분이 간사한 자에게 흩어지므로 일이 있으면 한 해에 두 번도 거둔다. 그래서 백성들의 원망은 고려 때보다도 더 심하다. 그런데도 위에 있는 사람들은 태평스럽게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우리 나라에는 호민이 없다.”고 한다.

견훤(甄萱) · 궁예(弓裔) 같은 자가 나와서 난을 일으키면 백성들이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위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운 형세를 바로 알고 정치를 바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 「호민론」의 요지이다.

「호민론」은 기성의 권위에 맞서 이단으로 일컬어질 만한 새로운 사상과 개혁의 이론을 내세운 그의 정치사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이다.

참고문헌

『의식구조상으로 본 한국인』(윤태림, 현암사, 1970)
『허균문선(許筠文選)』(이익성 역, 을유문화사, 1974)
『허균의 생각』(이이화, 뿌리깊은나무,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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