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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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새알의 껍질이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과 같다는 우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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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혼천설은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새알의 껍질이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과 같다는 우주관이다. 삼국시대의 우주관인 혼천설은 후한의 천문학자인 장형의 저서 『혼천의주』에서 나온다. 이 우주관은 한나라 문화의 유입과 함께 우리나라에 이식되어 4, 5세기경에 토착화되었다. 혼천설은 하늘의 일월 5위(행성)의 관측을 위한 기계인 혼천의의 제작의 기본이 된다. 권근의 논천(論天) 기사에서도 구설을 부연하는 데 그치고 있어 조선 초기까지의 정통적 우주관은 혼천설의 테두리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정의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새알의 껍질이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과 같다는 우주관.
내용

삼국시대의 우주관인 이 혼천설은 후한(後漢)의 천문학자인 장형(張衡)의 저서 『혼천의주(渾天儀註)』에서 나온다. 『진서』 · 『송서』 · 『수서』의 천문지(天文志) 등에 소개되어 있다. 그 중에는 개천설(蓋天說) · 선야설(宣夜說) · 혼천설 · 안천설(安天說) · 궁천설(穹天說) · 흔천설(昕天說) 등이 있다. 그 중에도 개천설 · 혼천설 · 선야설이 가장 자세하게 설명되었고 또 논의도 많았다.

이 우주관은 한나라 문화의 유입과 함께 우리 나라에 이식되어 4, 5세기경까지에는 우리 나라 천문학 속에 토착화되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고구려 · 백제 및 신라에서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고구려의 여러 고분에 그려진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와 그 구조의 특징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석굴암 원천장에서 제1차적 혼천설, 즉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적 상징을 찾을 수 있다. 혼천설에 대한 전 유가(儒家)의 구설(舊說)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은 모양이 새알과 같아 하늘이 땅의 바깥을 싸서 마치 알 껍질이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과 같으며 이것이 돌아서 끝이 없고 그 형체가 둥글어 혼천이라고 한다. 하늘의 둘레는 365도 145/589인데 그 반은 땅 위를 덮고 반은 땅 아래에 있다. 그 둘의 끝을 남극과 북극이라고 한다. 북극은 땅에서 36도가 나왔고, 남극은 땅 속으로 36도가 들어갔다. 양극의 거리는 182도 반강(半强)이고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지름 72도의 부분은 항상 나타나서 숨지 않는데, 이를 상규(上規)라고 하며 남극을 둘러싼 72도는 항상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데, 이를 하규(下規)라고 한다.

적도(赤道)는 하늘을 두른 끈으로 양극에서 각각 91도 소강(少强)이 떨어졌다. 황도(黃道)는 해가 지나가는 곳으로 반은 적도 밖에 있고 반은 적도 안에 있다. 적도와는 동에서는 각(角:별자리) 5도 소약(少弱)에서 만나고 서에서는 규(奎) 14도 소강에서 만난다. 황도가 적도 밖으로 가장 멀어졌을 때는 적도에서 24도가 떨어지는데 두(斗) 지도의 위치가 그곳이다. 적도 안으로 가장 멀어졌을 때는 역시 적도에서 24도가 떨어지고 정(井) 25도가 된다…….”

이것은 하늘의 구조와 운동이 꼭 오늘날의 구면천문학(球面天文學)이 나타내는 것과 같다. 즉, 둥근 지구를 둥근 하늘이 둘러싸고 있으며 이것이 서에서 동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 그 돌아가는 하늘의 축이 북극과 남극을 잇는 직선이고, 북극은 지평선에서 36도가 올라간 방향이고 남극은 지평선 아래로 36도 내려간 방향이며, 그 중간이 적도이고 태양이 지나는 황도는 적도에 대하여 24도가 기울었다는 것이다(여기서 하늘의 둘레(周天)가 365도 1/4이라 한 것은 오늘날에는 360도이므로 이 도와 현대의 서양식 도와는 같은 것이 아니다).

혼천설과 개천설 사이에는 시비의 논쟁이 많았는데 그 중에도 한나라의 양웅(楊雄)이 여덟 가지 사실을 들어서 개천설을 논박하고 혼천설을 옹호한 일은 매우 유명하다. 결국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점차로 개천설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지고, 혼천설은 관측기계를 다루는 관측자에 의하여 확고한 기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혼천설은 하늘의 일월(日月) 5위(五緯:5행성)의 관측을 위한 기계인 혼천의의 제작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이 혼천설에 따라 만든 혼천의는 멀리 요 · 순시대에도 있었다고도 하나 한나라 초에 낙하굉(落下閎) · 선우망인(鮮于妄人) · 경수창(耿壽昌)이 만들었고 뒤에 가규(賈逵)가 황도를 가(加)하였고 장형이 개조하였다고 한다.

장형의 『혼천의주』가 또 혼천설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하늘은 계란과 같고 땅은 계란 속의 노른자위와 같아 따로 하늘 속에 있는데 하늘은 크고 땅은 작다. 하늘의 표면과 이면에는 물이 있으며 하늘과 땅은 각각 기(氣)를 타고 서서 물을 싣고 운행한다. 하늘 둘레는 365도 1/4이며 가운데에서 나누어져 반은 땅 위를 덮고 반은 땅 아래를 둘렀다. 그러므로 28수[宿]가 반은 나타나고 반은 숨는다. 하늘은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것과 같이 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글 속의 물이 있다는 말과 기를 타고 섰다는 말이 후세에 많은 논란의 재료가 되었다. 음양오행의 설이 동원되고 멀리는 송나라에서의 이기(理氣)의 설에까지도 이어져갔다. 이 혼천설은 중국에서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도 시대에 따라 발전됨이 없이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시대의 권근(權近)의 논천(論天) 기사에서도 구설을 부연하는 데 그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의 정통적 우주관은 혼천설의 테두리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1-천문(이순지, 1445)
『진서 천문지(晉書 天文志)』
『송서 천문지(宋書 天文志)』
『수서 천문지(隋書 天文志)』
『中國天文學』(中國天文學史整理硏究小組, 1981)
『中國古代天文學成就』(北京天文館, 1987)
「中國の科學の文明」 第五卷(李約瑟, 『天の科學』, 1959)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 3(Needham,J., Cambrige, England,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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