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평양부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시하는 모욕적인 조건을 내걸고 사신을 보내오자, 제호(帝號)를 참칭한 죄를 문책하고 그 사신들을 죽임으로써 모욕을 씻자고 상소하였다. 마침내 그 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崔鳴吉) 등의 화의론(和議論)을 극구 반대하였다.
이 난으로 두 아들과 사위가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아내와 며느리도 적에게 붙들리자 자결하였다. 이 때문에 늙은 어머니와 딸 하나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조정의 권유로 청군(淸軍)의 화를 피해 평양부서윤으로 나갔다.
그러나 청나라의 강요로 화친을 배척한 사람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오달제(吳達濟) · 윤집(尹集)과 함께 청나라로 잡혀갔다. 그곳에서 그는 청장 용골대(龍骨大)에게 “작년 봄에 네가 우리 나라에 왔을 때 소를 올려 너의 머리를 베자고 청한 것은 나 한 사람뿐이다.”했고, 갖은 협박과 유혹에도 끝내 굽히지 않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평택의 포의사(褒義祠), 홍산의 창렬서원(彰烈書院),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 영천의 장암서원(壯巖書院), 고령의 운천서원(雲川書院), 평양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화포집(花浦集)』 · 『북행록(北行錄)』 · 『서정록(西征錄)』이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송자대전(宋子大全)』
- 『명배신고(明陪臣考)』
- 『병자일록(丙子日錄)』
- 『일사기문(逸史奇聞)』
- 『조선유학사』(현상윤, 민중서관, 197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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