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
제도/관직
설치 시기
1469년(예종 1)
폐지 시기
1905년(광무 9)
소속
세자시강원
내용 요약

사서(司書)는 조선시대에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 세자관속으로 설치된 사경이 1469년(예종 1)에 사서로 바뀌었으며, 이후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으로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중종 대 이후에는 겸사서가 증치되기도 하였다.

정의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
설치 목적

조선 초기에 세자의 강학(講學)과 시위(侍衛)를 위해 설치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우사경(左右司經)이 1명씩 있었는데, 경연에 정7품의 사경이 설치되면서 중복을 피해 1469년(예종 1)에 세자시강원사경을 사서(司書)로 바꾸었다.

임무와 직능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시강원은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사서를 강하고, 도의를 올바로 계도하는 일을 맡았으며, 겸임 관원과 전임 관원이 있었다.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겸직으로는 영의정이 겸임하는 정1품의 (師) 1명, 의정(議政)이 겸임하는 정1품의 (傅) 1명, 의정부찬성(贊成)이 겸임하는 종1품의 이사(貳師) 1명, 정2품의 좌빈객(左賓客)과 우빈객(右賓客) 각 1명, 종2품의 좌부빈객(左副賓客)과 우부빈객(右副賓客) 각 1명 등 총 7명이 있었다.

전임 관원으로는 종3품의 보덕(輔德) 1명, 정4품의 필선(弼善) 1명, 정5품의 문학(文學) 1명, 정6품의 사서 1명, 정7품의 설서(說書) 1명 등 5명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문관이었으며, 세자는 사서를 포함한 전임 관원들에게 하루 3차례 수업을 받았다. 전임 관원들은 품계로 구분될 뿐 특정한 전공과목이 따로 없었으므로 교과과목으로 지정된 모든 과목을 교육하였으며, 순서를 정해 번갈아 가면서 주로 유교 경전과 역사책으로 교육하였다.

변천사항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중종 이후 겸사서(兼司書)가 임명되는 기록이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 속대전』의 세자시강원에는 겸사서가 증치되어 정6품직의 사서와 겸사서가 각각 1명씩 함께 수록되어 있다. 1894년(고종 31)에 관제를 개정하면서 시강원이 궁내부 예하에 편입될 때에도 사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1905년(광무 9)에는 황태자궁시강원(皇太子宮侍講院)에 사서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고종실록(高宗實錄)』
『속대전(續大典)』
『예종실록(睿宗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태조실록(太祖實錄)』

단행본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교육』(민속원, 2008)
신명호, 『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 혜경궁 홍씨, 인수대비, 사주당 이씨에게서 조선시대의 총명하고 어진 자녀 교육법을 배운다』(시공사, 2005)
김문식·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김영사, 2003)
강태훈, 『경연과 제왕교육』(재동문화사, 1993)

인터넷 자료

조선왕조실록사전(http://waks.aks.ac.kr/site/encysillok)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