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 )

주생활
유적
국가유산
16세기 중반에,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
유적/건물
건축 양식
ㅁ자집, 뜰집
건립 시기
16세기 중반
규모
사랑채, 정침, 사당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시도민속문화유산(1992년 11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 仁同長氏 宗宅)은 16세기 중반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이다. 보물로 지정된 선조 장말손의 영정과 인동장씨 가문 관련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사랑채와 정침은 외관상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목 구조인 점이 특이하다.

정의
16세기 중반에,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
건립 경위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 仁同長氏 宗宅)은 인동장씨 가문의 장언상(張彦祥, 15291609)이 16세기 중반에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의 꽃계마을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이다. 장언상은 조선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 평정에 참여하여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고 말년에 연복군(延福君)에 봉해진 안양공(安襄公) 장말손(張末孫, 14211486)의 현손(玄孫)이고, 이 가문의 영주 입향조(入鄕祖)인 장응신(張應臣, 1490~1554)의 손자이다. 장언상 이후 후손이 번창하여 꽃계마을은 인동장씨의 씨족마을이 되었고 이 집이 종택이 되었다.

변천

종택 왼쪽의 사당은 1971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종택이 1992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이후 19951998년, 20022006년에 각종 보수를 시행하였다. 정침(正寢) 우측에 ㄴ자로 덧붙어 있던 행랑채(行廊채)는 1998년에 현재의 한식 목 구조 형태를 갖추었고, 마당 좌측의 부속 건물 2동은 2000년대 이후에 신축한 것이다.

한편으로 종택이 소장하고 있던 장말손 초상과 인동장씨 가문 관련 각종 유물들은 1969년, 1976년 1989년에 연이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1984년 집 우측 뒤에 콘크리트로 한옥 형태의 유물 전시관을 지어 각종 유물을 수장했는데, 2005년 그 앞에 규모가 더 큰 유물각을 다시 짓고, 옛 유물 전시관은 영정각이라 부르고 있다.

형태와 특징

장수면 소재지 남서쪽의 화기리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화계길을 따라 북쪽으로 300m쯤 가면, 길 왼쪽에 뒷산을 끼고 동향해 있다. 집앞 길 건너로 남북으로 굴미들과 꽃게들의 전답이 펼쳐지고 그 너머에 개천이 흐르는데 남쪽에서 옥계천에 합류한다.

근래에 지은 솟을대문을 지나면 마당 제일 왼쪽에 신축 건물 2동이 북향하여 있고 그 뒷편 석축 위로 사랑채와 정침, 행랑채가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동쪽을 바라보고 늘어서 있다. 정침 왼쪽 뒤로는 담장을 두른 사당이 동향해 있다. 행랑채 우측으로 약간 뒤로 물러난 석축 위에는 담장을 두른 정면 3칸, 측면 1칸의 영정각이 동향해 있고, 그 아래의 마당 우측에 신축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유물각 건물이 남향해 있다.

사랑채와 정침은 외관상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과 지붕 일부만 연결될 뿐 별개의 목 구조인 점이 특이하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석축 높이에 맞춰 누하주(樓下柱)를 높게 세우고 전면에는 헌함과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달아 누각처럼 만들었다. 6칸 중 2칸에 온돌방을 만들고 좌측과 전면에 사랑대청과 툇마루를 설치했는데 마루를 깐 공간 상부는 소로수장(小櫨修粧)으로 꾸몄다. 사랑대청 위로는 외기에 눈썹반자를 설치하였고, 추원재(追遠齋)라 쓴 편액을 달았다.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ㅁ자집에서 사랑채쪽의 정면 2칸이 빠지고 우측 정면에 한 칸이 행랑채 쪽으로 옆으로 자라난 형태이다. 중문간은 안마당 정면 쪽의 가운데가 아닌 한 칸 옆 우측 모서리에 연결된다. 안마당 너머 안대청은 정면 3칸에 보 방향으로 1칸 깊이인 3량가에 판대공을 올리고 정면 기둥 2개는 원기둥을 썼다. 대청 왼쪽에 상방과 상방 부엌, 오른쪽에 안방과 안방 부엌을 좌우익사(左右翼舍)까지 합쳐 설치하였다. 안방과 안방 부엌, 상방과 상방 부엌 사이엔 단차가 있어 방에서 부엌 위의 다락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상방 부엌은 안마당 쪽으로 개방된 형태인데, 상부의 다락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안마당 쪽 기둥 옆에도 설치하였다.

사당은 사랑채 뒤 정침 왼쪽 경사지 위 담장의 사주문 안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로 전퇴칸 달린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전퇴칸에는 소로수장과 원기둥으로 꾸미고 전면 양측의 기둥은 장초석(長礎石) 위에 올렸다. 본채에는 각기둥을 세우고 내부에 마루를 깔았고, 양쪽 박공(牔栱)풍판(風板)을 달았다.

의의 및 평가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는 외관과 달리 사랑채와 정침이 별도의 목 구조로 만들어진 특이한 사례이다. ㅁ자 정침에서 돌출되었으면서 실제로는 구조적으로 연결된 다른 경상북도 지방 사랑채들의 사례들과 비교된다.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세거하면서 가문의 유산을 보존한 종택의 문화적 역할 또한 특기할 만하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우원 편, 『경상북도 문화재도록』 2(동해문화사, 1995)
문화체육부 문화재관리국, 『’95년도 문화재수리보고서 하권』(문화체육부 문화재관리국, 1997)
전국건축문화자산 자료조사 행사위원회, 『전국건축문화자산 8권: 대구 경북편』(’99 건축문화의해 조직위원회, 1999)

인터넷 자료

디지털영주문화대전(http://yeongju.grandculture.net)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기타 자료

경상북도, 『경상북도 문화재 대장: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집필자
이우종(영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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