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환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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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국악
작품
문소전에서 태조를 제사할 때 쓰인 초헌악의 미칭.
작품/전통음악
창작 연도
1432년
작자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환환곡」은 문소전에서 태조를 제사할 때 쓰인 초헌악의 미칭이다. 1432년에 새로이 악장을 지어 당악 「중강령」의 선율에 얹어 불렀다. 악조는 황종청궁이며, 악장은 4자 8구로서 태조의 무용과 건국의 위업을 찬양하였다. 임진왜란 이후로 원묘제가 폐지됨에 따라 폐절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숙종 때부터 진연의 음악으로 연주되기 시작하여 잔치 음악으로 그 전승이 유지될 수 있었다. 잔치 음악으로 쓰인 「환환곡」은 기악곡으로 추정되나, 현재 이 곡은 연주되지 않고 있다.

목차
정의
문소전에서 태조를 제사할 때 쓰인 초헌악의 미칭.
전승 과정

「환환곡(桓桓曲)」은 주1에서 태조(太祖)를 제사할 때 쓰인 초헌악(初獻樂)의 미칭으로, 1432년(세종 14)에 새로이 악장을 지어 당악 「중강령(中腔令)」의 선율에 얹어 불렀다. 당시에는 곡이름이 없었으나 이듬해인 1433년 박연(朴堧: 1378~1458)의 건의에 의하여 곡이름이 「환환곡」으로 정해졌다.

「환환곡」은 1447년(세종 29)에 정한 ‘평상시에 사용하는 속악[시용속악(時用俗樂)]’ 가운데 한 곡으로 포함되었으며, 이후 1471년(성종 2)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당악 취재곡목의 하나로도 쓰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문소전이 소실된 후로 다시 재건되지 않았고, 원묘제(原廟制) 역시 폐지됨에 따라 그 제례악의 하나였던 「환환곡」은 자연 폐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1706년(숙종 32)부터 진연의 음악으로 연주되기 시작하여 잔치 음악으로 그 전승이 유지될 수 있었다. 정조(正祖)와 순조대의 헌경왕후(獻敬王后: 1735~1815), 즉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를 위한 연회에도 연주되었는데, 잔치 음악으로 활용된 「환환곡」은 가사가 없는 기악곡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곡은 연주되지 않고 있다.

내용

악조는 황종청궁(黃鍾淸宮)이며, 악장은 4자 8구로서 태조의 무용(武勇)과 건국의 위업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환환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환환성조 수명부장(桓桓聖朝 受命溥將)[늠름하신 태조께서 천명을 받으심이 광대하도다]
공광고석 부응휴상(功光古昔 符應休祥)[공이 옛날에 빛나고, 부는 아름다운 상서(祥瑞)에 응하였도다]
천인협순 엄유동방(天人協順 奄有東方)[하늘과 사람이 협찬하여 문득 동방을 두셨다]
이모유후 혜아무강(貽謀裕後 惠我無疆)[계책을 남기시어 후손에 복을 주시니, 우리에게 은혜 주심이 한이 없도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세종실록(世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단행본

『신역악학궤범』(국립국악원, 2000)
주석
주1

조선 태조와 그 비(妃)인 신의 왕후(神懿王后)의 위패를 모신 사당.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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