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천군읍지책 ()

희천군읍지
희천군읍지
인문지리
문헌
1899년 5월, 희천군수 조하식의 주관하에 평안북도 희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이칭
이칭
평안북도희천군읍지책부지도(平安北道熙川郡邑誌冊附地圖)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99년 5월
편저자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조하식(趙夏植)
권책수
1책 10장
판본
필사본
표제
평안북도희천군읍지책부지도(平安北道熙川郡邑誌冊附地圖)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희천군읍지책』은 1899년 5월 희천군수 조하식의 주관하에 평안북도 희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 10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별도로 제작한 회화식의 희천군 지도를 책의 첫머리에 실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 이후 희천군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이전 시기에 편찬된 읍지들과의 비교를 통해 19세기 말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정의
1899년 5월, 희천군수 조하식의 주관하에 평안북도 희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저자 및 편자

희천군수 조하식(趙夏植)의 주관하에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지금의 [자강도 희천시]에서 편찬하였다. 조하식은 1896년(고종 33)에 희천군수로 부임하였다.

서지사항

1책 10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0.2㎝, 가로 19.3㎝이다. 표제는 ‘평안북도희천군읍지책부지도(平安北道熙川郡邑誌冊附地圖)’로 희천군 지도가 수록되었음을 표기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새롭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9년(광무 3) 5월에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내제 ‘광무삼년오월 일평안북도희천군읍지책(光武三年五月 日平安北道熙川郡邑誌冊)’과 읍지 마지막 부분 ‘희천군수 조하식 관찰사 각하(熙川郡守 趙夏植 觀察使 閣下)’라는 표기를 통해, 1899년 5월 희천군수 조하식이 관찰사에 보고할 목적으로 읍지를 편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하식의 직인이 함께 찍혀 있다.

구성과 내용

책의 첫머리에 별도로 제작한 회화식의 희천군 지도를 삽입하였고, 이어 희천군 역사를 간략하게 적었다. 수록 항목은 군명(郡名), 산천, 토산(土産), 읍기(邑基), 성곽(城郭), 학교, 역원(驛院), 불우(佛宇), 사묘(祠廟), 고적(古蹟), 인물, 창오(倉廒), 관애(關阨), 파발(擺撥), 누정(樓亭), 진공(進貢), 교량(橋梁), 도로, 방리(坊里) 순으로 구성하였으며, 희천군의 지리정보를 기록하였다. ‘방리’ 항목 다음에 희천군의 거주인구, 가택 수, 주1 등을 적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희천군에는 4,437민호(民戶)에 백성 1만 7539명이 거주하였다. 남녀 수는 남성이 9,893명, 여성이 7,646명이었다.

의의 및 평가

『희천군읍지책(熙川郡邑誌冊)』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편 이후 희천군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한 역사 자료이다. 1871(고종 8)년에 수록된 주2, 1895년에 편찬한 주3와 함께 19세기 말 변화하는 희천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관서읍지(關西邑誌)』

논문

이재두, 「19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읍지 편찬」(『조선시대사학보』 103, 조선시대사학회, 2022)
양보경, 「조선시대 읍지의 성격과 지리적 인식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87)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토지세 징수의 기준이 된 논밭 면적의 전체 수. 우리말샘

주2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청구기호: 규 12168.

주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청구기호: 규 12169.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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