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1945년 10월 13일 조직된 북한지역의 독립적 공산당 조직이다. 해방 이후 재건된 조선공산당의 중앙원회가 서울에 있어서 북한의 공산주의자들도 남한에 있는 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받았다. 북한을 점령 통치한 소련군은 북한지역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공산당 조직을 결성하도록 지도했다. 그러나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은 공산당 1국1당 원칙에 근거해 독자적 공산당 조직 결성을 반대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설치하는 데 합의하였다. 김일성파는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결의하였고, 1946년 4월 19일 최초로 공식 사용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한반도의 공산주의자들은 서둘러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다. 재건된 조선공산당의 중앙위원회는 서울에 있었고 지도자는 박헌영이었다. 한반도가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분할 점령 초기에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도 남한에 있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받았다.
북한을 점령 통치하게 된 소련군은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서울에 있는 지도부의 명령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공산당 조직을 북한지역에 결성하도록 지도했다. 소련군은 북한지역의 공산주의자 조직이 소련군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복종하기를 원했다.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미군점령지역인 남한에 있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면 소련군의 그러한 희망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소련군은 판단했다.
소련군은 김일성과 김책 등 일제말기 시베리아에서 소련군에 편입되어 있던 공산주의자들과, 박헌영과 관계가 좋지 않은 북한거주 공산당원들을 지원하여 북한지역의 독립적 공산당 조직을 결성하도록 공작했다. 소련군의 그러한 공작에 따라, 1945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 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가 비공개리에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소련군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일성은 보고를 통해 북한지역을 분리하여 먼저 공산화하고, 공산화된 북한을 기지로 삼아 남한까지 공산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계획을 효과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지역에 독자적 공산당이 조직되어야 한다고 제의했다. 오기섭 정달현 등 박헌영을 추종하는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은 공산당의 1국1당 조직원칙에 근거하여 그러한 김일성의 제의에 반대했다.
국내파의 완강한 반대에 당면하여 김일성파는 독립적인 북조선공산당을 결성하려는 당초의 계획에서 후퇴했으며, 북조선공산당이 아닌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설치하기로 양측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북조선분국의 책임비서(대리)에는 김용범이 선출되었다. 서울의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45년 10월 23일 북조선분국의 설립을 정식으로 승인하였다.
소련군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내에서 김일성파의 세력이 우세해지도록 공작한 끝에 1945년 12월 17일과 18일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개최하도록 지도했다. 그 회의에서 김일성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책임비서로 선출되었다. 김일성의 책임비서 선출은 소련군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세력이 북한지역 공산주의자 조직을 보다 확고하게 장악하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이 회의에서 책임비서 김일성은 북한지역에 완전히 독립된 당 중앙기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제부터는 조직의 명칭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아닌 북조선공산당으로 변경하자고 제의했다.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은 그러한 명칭변경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파 간의 격론 끝에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파가 국내파를 제압하고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결의했다. 결의 후 두 파간에는 격렬한 갈등이 야기되었으며, 소련군은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김일성파로 하여금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의 사용을 당분간 보류하도록 조정했다. 이러한 소련의 조정에 따라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1945년 12월에 북한지역의 공산주의자 조직의 명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결정해놓고도 그것을 공식 명칭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의 언론매체에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46년 4월 19일이다. 이날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 · 소공동위원회의 5호성명에 대한 북한 공산주의자 조직의 입장을 발표하면서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공식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