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개명(改名)은 조저(曹著). 사위는 광산김씨 양간공파 시조인 김연(金璉)이다.
1227년(고종 14) 조시저(曹時著)는 장군으로서 무신집권자 최우(崔瑀)의 명을 받고 희종을 처음에는 강화현(江華縣), 나중에는 교동(喬桐)으로 옮겼다. 최우가 조시저로 하여금 희종의 유배지를 옮기는 조치를 단행하게 된 배경은 술사(術士) 주연지(周演之)가 “상장군 노지정(盧之正), 대장군(大將軍) 김희제(金希磾) 등이 희종을 복위시키려 모의했다”고 최우에게 참소를 했던 사건과 연관된다.
이후 1231년(고종 18) 12월 몽골 제1차 침입이 종료될 즈음 조시저는 몽골과의 화의(和議)를 위해 몽골군 사령관 사르타이[撒禮塔]에게 황금 19근, 백금 460근, 은병(銀甁) 116구 등 많은 국가 예물을 제공하는 방물외교(方物外交)를 전담하였다. 이러한 조시저의 활동을 통해서 볼 때, 조시저는 최우의 심복이자 도방(都房)의 유능한 장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행적은 자세하지 않으나 「김연 준호구(金璉 准戶口)」에 의하면 관직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예부상서(禮部尙書) 상장군(上將軍) 태자빈객(太子賓客)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