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정 초서 취영구절 ( )

이지정 초서 취영구절
이지정 초서 취영구절
서예
작품
1647년(인조 25)에 이지정(李志定)이 쓴 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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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47년(인조 25)에 이지정(李志定)이 쓴 서첩.
구성 및 형식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모두 20면으로 이루어진 절첩(折帖)으로, 이지정의 지기(知己) 이민구(李敏求, 1589∼1670)가 지은 칠언절구 8수와 오언절구 2수를 초서로 쓴 것이다. 10수 모두 이민구의 문집 『동주집(東州集)』 권11에 실려 있다. 칠언절구 8수는 「장차 북쪽으로 돌아가려고 서호에 배를 띄우고 취중에 절구 여덟 수를 지어 청선옹에게 붓을 휘둘러 줄 것을 청하다(將北歸 泛舟西湖 醉占八絶 請蟬翁放筆)」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고, 오언절구 2수는 「소희를 읊다(賦小姬)」와 「배를 돌리다(舟回)」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서호(西湖)는 이민구의 유배지이자 이지정이 ‘청선(聽蟬)’이란 편액을 걸고 한묵(翰墨)으로 여생을 마감한 공간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해당한다. 서첩 중간에 취영구절(醉詠九絶)과 관련 없는 이민구의 시문 몇 편이 추가로 첨부되어 있다.

내용

인조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 이지정(1588∼1650)이 1647년에 쓴 서첩이다. 이 서첩의 글씨는 이지정이 절친했던 지기 이민구와 함께 서호에서 뱃놀이를 할 때 이민구가 시를 짓고 이지정에게 휘호해 줄 것을 부탁하자 이지정이 초서로 써 준 필적이다. 오언절구 「배를 돌리다(舟回)」의 바로 뒤에 “정해년(1647) 여름 5월 17일에 동주가 환어정(喚魚亭) 주인옹을 위해 취중에 절구 9수를 짓고 청선이 쓰다(丁亥夏五月十七日 東州爲喚魚亭主人翁 醉詠九絶 聽蟬書)”라는 발문이 있어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다. 환어정 주인은 성시망(成時望)을 가리킨다. 그는 젊었을 때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중년 이후로는 학문을 버리고 어업에 종사하여 소금과 어류를 판매하여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공진(貢津, 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환어정과 침해당(枕海堂)을 지어 한때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서첩의 국가유산명인 ‘취영구절(醉詠九絶)’은 발문의 내용에서 취한 것이다. 발문의 내용대로 절구 9수가 실려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10수인 것은 뱃놀이의 정황과 전혀 관련이 없는 오언절구 「소희를 읊다」가 후대의 장첩(粧帖) 과정에서 잘못 첨입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민구는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당시 강도검찰부사(江都檢察副使)로서 인조를 제대로 피신시키지 못한 죄로 영흥(永興)에 유배되었다가 1643년(인조 21)에 아산(牙山)으로 이배되었고 1647년 4월에 사면되었다. 이지정은 사위 이계(李烓)가 명(明) 상선과 밀무역한 죄에 연좌되어 1642년(인조 20) 성천부사(成川府使)직에서 파직당한 뒤 이민구의 유배지인 아산에 인접한 계두리(鷄頭里)에 거처하며 이민구와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이민구가 지은 절구 9수는 사면을 받은 뒤 귀경을 목전에 두고 성시망의 주선으로 이지정과 함께 서호에서 작별을 겸한 마지막 뱃놀이를 하며 지은 것으로, 지난날의 회한과 이별을 앞둔 진한 아쉬움이 표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첩 『취영구절』은 아산 서호라는 문화적 공간을 배경으로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문장가 이민구와 명필 이지정의 유배의 시름과 파직의 고통이 시와 유묵으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이지정 초서의 유일한 기년작이자 만년의 필적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청선 이지정(1588∼1650)의 서예」(유지복, 『서예학 연구』 10, 2007)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유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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