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송혜수는 해방 이후 송혜수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쓴 서양화가이다. 1913년 평양 출신의 일본 유학파이다. 일본 유학 시절에 전위적인 작품 활동으로 당시 일본 미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주로 ‘소’를 모티프로 하여 민족 정서, 생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서울에서 8.15 해방을 맞았고 부산에 정착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92세로 타계하기 전 송혜수미술상 기금을 마련하여 해마다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부산미술계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2001년에 동다송문화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 타계한 후 그 해에 송혜수미술상이 제정되었다.
정의
해방 이후 송혜수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쓴 화가. 서양화가.
개설
당시 작품의 특징은 황토색을 주종으로 한 ‘소’를 통해 민족 정서, 생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소’는 작업의 일관된 모티프였으며 그 외에도 ‘불상’, ‘여인’ 등을 다루었다. 조형적으로는 선묘와 색채가 강조된 구상화와 반추상화를 넘나들었다. 평생 실향민으로서 화단의 주류를 비켜선 재야 화가로서 풍운아처럼 떠돌며 살면서도 부산에 정착한 이후 송혜수미술연구소를 차려 후진 양성에 힘썼다. 또한 92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전 사재를 털어 송혜수미술상 기금을 마련하여 해마다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부산미술계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생애
활동사항
해방 공간의 미술계가 대한미협과 미술협회로 양분되어 있을 때 송혜수는 김환기, 김병기, 장욱진, 김영주, 남관 등과 일종의 재야파 미술가들의 모임인 ‘50년 미술협회’를 결성했다. 6·25전쟁의 발발로 활동을 지속하지는 못했으나 의욕적인 활동 의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6·25전쟁 시기에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로서 장욱진, 한묵과 함께 ‘종군 스케치 3인전’(1951)을 여는 등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참담한 시대상을 지속적으로 다루었다. 이후 부산에 자리를 잡고 부산작가로 활동하면서 재야파로 남았으나 1972년에는 한국신자유미술가회를 창립하여 활동 반경을 다지기도 했다. 또한 송혜수미술연구소를 통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고, 2005년 타계 직전에는 사재를 들여 ‘송혜수미술상’을 제정하여 후배 작가들의 활동을 독려하는 등 한국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김준기의 부산미술 다시 읽기」(『부산일보』, 2008. 5. 22)
- 「자연의 확대와 감성의 양식화」(김윤수, 『한국현대미술전집』15, 정한출판사, 1980)
- 국립예술자료원(oralhistory.kna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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