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봉 콜호즈 ( kolkhoz)

사회구조
단체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 칠리구역에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콜호즈).
이칭
이칭
아방가르드-콜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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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 칠리구역에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콜호즈).
개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설립초기부터 벼농사에서 경이적인 생산량 증가를 보여주었다. 이 결과 소련정부 당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고, 많은 고려인 사회주의 노동영웅들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아방가르드 콜호즈를 소개하는 영상물이 여러 차례 제작되었다.

설립목적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부터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을 공동체로 결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이었다. 당시 벼농사 불모지였던 곳에서 벼농사가 시도되었고, 이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고, 크즐오르다가 소련 전체에서 벼농사의 중심지로 부각되는데 큰 역할을 한 크즐오르다의 고려인 대표 콜호즈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성인 남성 주민이 노동부대로 동원됨에 따라 콜호즈는 노동일손과 기계 장비가 턱없이 모자랐음에도 국가 정책에 따라 고려인 콜호즈의 벼농사 재배면적은 계속 확대되었다. 이 기간 동안 4개의 고려인 벼농사 콜호즈가 재배면적을 3.5배 이상 확대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아방가르드’ 콜호즈이다.

이러한 전시의 생산량 증가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중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에 위치한 ‘아방가르드’를 포함한 4개의 고려인 벼농사 전문 콜호즈는 당시 기준으로 35만 루블 이상의 성금을 냈고, 10만5천루블 이상의 방위채권을 구입하였으며, 상당량의 쌀, 다양한 규모의 물자들을 전선에 군수물자로 보냈다.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벼농사에서 거둔 탁월한 성과,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한 농업지도자 김만삼, 그리고 탁월한 성과를 기반으로 실시된 도정공장 및 문화회관 건설 등의 생활기반 개선에 대한 상황들이 영상물로 제작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김만삼 이후에도‘아방가르드’콜호즈는 농장장이면서 아들이었던 김홍빈, 김만삼의 뒤를 이어 농업기술 혁신 및 생산에 기여를 한 장금철 등의 많은 고려인 농업 노동영웅을 배출했다.

기능과 역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콜호즈 대형화 추진을 계기로 기존의 벼농사 중심 기능은 축산업과 농업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대단위 농업 콜호즈의 역할로 확대되었고,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고려인과 축산업 같은 다른 농업 패턴을 가진 타민족 집단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된 하나의 거대 농촌 생산 및 촌락공동체로 규모와 역할이 확대되었다.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벼 생산량의 경이적인 증대 뿐만 아니라 이른바 모래 사막지대에서 농업기반환경의 개선(수로 건설 등)을 통해 자연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벼농사를 가능토록 한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로 인해 문명사적으로는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높이고, 암염지대 토양에 관개를 통한 농사가 가능토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방가르드’ 콜호즈가 보여준 성과는 이를 소개하는 영상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1946년 제작된 ‘크즐오르다주 칠리구역 고려사람(韓人) 집단농장 아방가르드(선봉) 특집’은 1940년대의 고려인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영상물로 아방가르드 집단농장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특집 영상물이다. 이 시기 고려인과 관련된 영상물이나 아방가르드 농장을 다룬 다른 영상물은 대부분 1-2분 정도의 짤막한 소식 전달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방가르드 농장 특집편은 30분 정도 길이로 아방가르드 집단농장의 농사, 집단농장의 설립 및 변천사, 집단농장내의 한국어 중등학교, 농장 농업지도자 김만삼의 지도아래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벼농사 과정, 현지의 카작인과 협동작업을 하고 있는 농장 가축작업반, 수확된 벼의 국가납부 장면, 집단농장의 전체 총회 모습, 집단농장에서의 여가생활, 가을걷이 후의 결혼식 및 축제, 가을걷이 축제에 출연한 탈듸쿠르간 주립 고려극장 공연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1940년대에 활성화된 고려인집단농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황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의 남쪽 14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된 고려인 젊은 세대들의 이농현상이 점점 심화됨에 따라 현재 농장 구성원의 다수는 토착민족인 카자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동체로 변모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농장 관리사무소 건물 옆에는 이 농장이 배출한 16명의 고려인 노동영웅, 이에 상당하는 카자흐인 노동영웅들을 기리는 기념비와 명패들이 세워져 있어, 과거의 영광을 추모하고 있다. 또한 1940년대 후반 건설되었던 콜호즈 관리사무소 건물, 문화회관 등은 여전히 동일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으며, 당시 콜호즈내에 세워졌던 49호 중학교는 예전 건물은 그대로 남겨둔 채 바로 옆에 새로운 건물을 세워서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37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이후 크즐오르다에 위치한 고려인 콜호즈들은 현지의 성공적인 정착, 현지사회 발전에 대한 탁월한 기여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인 사례로 현지 고려인 사회 뿐만 아니라, 현지 토착민 사회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방가르드’ 콜호즈이다.

크즐오르다에서 벼농사를 위해 강제이주 이후 세워진 고려인 콜호즈들은 모래사막 황무지로 버려져 있었던 지역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킴으로써, 1930년대 초반의 강제집산화로 인한 이 지역에서의 농업생산 및 인구의 공백을 메우고 카자흐스탄을 소련 벼농사의 중심지대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고려인 노동영웅들이 가장 많이 배출된 콜호즈 가운데 하나인 ‘아방가르드’ 콜호즈는 다른 고려인 중심 콜호즈와는 달리 이 콜호즈가 배출한 고려인, 현지인(카자흐인) 노동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워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및 정착의 역사에서 있어서 중요한 유적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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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u.m.wikipedia.org/wiki/Ким_Ман_Сам
집필자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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