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1946년 2월, 조선국민음악연구회가 편집하고 발행한 『해방기념 애국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포함 9편의 노래가 피아노 반주부까지 포함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 해방가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침 해 고흘시고」(임학수 작사, 김성태 작곡), 「해방전사의 노래」(임화 작사, 안기영 작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음악은 평범한 장조 5음계의 행진곡이며, 가사는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텄네’ 등의 해방의 감격, ‘동무야 자리 차고 일어 나거라’, ‘동무야 발맞추어 함께 나가자 / 우리의 앞길이 양양하도다’ 등의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과 실천의 독려를 담고 있다.
1947년 박용구 등 평론가에 의해 김순남 작곡의 「해방의 노래」와 비교되어 일본 군가조의 노래라고 비판받았으나, 해방가요 중에는 이 시기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이후에까지 구전되었다. 1960년 4 · 19혁명 시기에도 경남과 서울의 시위대에서 모두 불렸을 정도이며, 이후 대학생들의 데모 현장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였다.
1972년 3월 김민기가 서울대 문리대의 진입생(교양과정부를 마치고 본과로 진입한 학생을 지칭)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 노래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연행되고 음반이 수거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는 이 노래가 대표적인 데모노래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구전 과정에서 제목과 악곡, 가사 일부가 바뀌었는데, 제목은 ‘해방가’로 정착되었고, ‘동무여’가 ‘동포여’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 노래는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생에게 민중가요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