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5월 28일,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면 영기리 10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55년, 카톨릭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하였다가 1959년에 중퇴하였다. 1961년에는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하여 작곡을 전공하였고 이어 대학원에서 국악 이론을 공부하여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5년부터 강사로 활동하다가 1979년에 성신여대 교수로 임용되었고, 1982년부터 서울대로 국악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 이듬 해인 1983년에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 예술철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수료하였다. 1986년에는 한국국악교육학회 회장을, 1995년에는 국립국악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정년퇴직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겸임교수를 지내며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2003년 9월 26일에 서거하였다.
작곡, 지휘, 저술, 교육, 행정 등 다양한 이력을 남겼다. 특히 작곡가라는 본령을 지키며 3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는 점이 주목된다. 작곡가로서의 고민과 실험정신이 담긴 그의 작품은 당시 국악 창작계에 신선한 충격과 파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국악교육 증진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악교육 정상화를 위한 청원’을 청와대 ‧ 국회 ‧ 교육부 등의 주요 기관에 제출하여 국악과의 교직과정을 증설하였고, 국악교육총서를 발간하였으며, 학회지 『국악교육』의 수준을 향상시켰다. 국립국악원장 재직 시절에는 예악당을 건립함으로써 국립국악원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대표 작품으로는 「가야금 독주곡 제1번」, 「놀이터」, 「숲속의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국악관현악입문」, 가곡 「사슴은 노래한다」, 무용극 「호동왕자」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음악통론과 그 실습』(1971), 『알기쉬운 국악개론』(1994, 공저), 『한국 한국인 한국음악』(1997) 등이 있다.
1969년과 1971년에 한국문화대상 국악부문 창작상, 1985년에 KBS국악대상 작곡상, 1996년에 세종문화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에는 보관문화훈장 서훈 받았다. 그밖에 다수의 감사패와 공로패를 수여 받았다.
추모행사로는 『한국 한국인 한국음악』 개정판 간행, 한국전통음악의 창작방법에 관한 논문을 모은 『한국음악형성론』 출판, 추모음악회 개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