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공업화전략은 수출산업 발전을 중심으로 공업화를 달성하려는 경제정책이다.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었는데 5·16군사정변 이후 국내 자본조달을 중시하면서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세웠다. 비료, 정유, 제철 등 수입대체가 시급한 분야를 공업화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차질이 생기면서 수출 주도 산업화로 전환되었고, 수출산업과 관련된 주요 분야가 해외에서 조달됨으로써 대외의존성이 높아졌다. 또한 수출 촉진을 위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이 강요되었다.
공업화를 추구하는 후발 국가들의 일반적인 경제 전략은 수입대체 공업화이다. 세계 경제체제에서 충분한 경쟁력과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힘든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선발 공업국가로부터 생산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업제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제수지 불균형과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따라서 공업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후발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선발 공업국가에서 수입하는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고자 하는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펴게 된다.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은 또한 신생 독립국가들의 강렬한 민족주의적 열망과도 연결되는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 또한 선발 공업국가로부터 기계, 설비와 같은 생산재를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외환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1차 산업 생산물의 수출로 충분한 외화가득(外貨稼得)이 불가능하다면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게 되고 이로부터 수출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도출된다.
한국에서 수출 공업화 전략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이다. 정부 수립과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는 큰 혼란에 빠졌고, 1950년대까지 미국의 원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이 변화하면서 자체 경제개발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입안 · 추진되었다.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를 거치면서 준비된 경제개발계획은 5 · 16군사정변 이후 일정한 변화와 수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실천되었다. 1962년 1월 발표된 경제개발계획의 특징은 국내 자본조달을 중시하면서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이라는 것이다. 당시 공업화의 목표는 ‘에너지원의 개발’, ‘경제구조의 균형적 개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고용의 증대’, ‘수출증대’, ‘기술의 진흥’의 순서로 그 중요도가 매겨졌다.
수출 증대는 다섯 번째 중요도를 가질 정도로 그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공업화의 주요 대상도 비료공장, 정유공장, 제철공장 등 수입대체가 시급한 분야로 설정되었고, 수출은 주로 1차 산업 생산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국내외로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미국의 반대가 중요했다. 미국은 재정안정을 강조하면서 비현실적인 성장률과 수입대체 전략을 비판했다. 미국의 비판과 함께 실물경제 상황도 매우 좋지 않았다.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한 화폐개혁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애초 정부는 화폐개혁을 통해 국내 축장화폐를 강제 저축하도록 유도해 산업개발공사를 통해 공업화 기초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그 성과는 매우 미미했고, 오히려 시중의 자금사정만 악화시키고 말았다. 결국 정부는 화폐개혁의 실패를 자인하고 새로운 자본조달 방식을 강구해야만 했다. 여기에 1962년 심각한 가뭄으로 농업작황이 매우 좋지 않아 ‘쌀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쌀 수출이 중단되고 베트남 등지로부터 쌀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미국에 추가 농산물 원조를 요청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애초 경제개발계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1964년 2월 발표된 보완계획은 성장률을 애초 7.1%에서 5%로 하향 조정, 제철소와 종합기계제작소 건설계획 백지화, 민간기업 역할 강화 등의 내용과 수입대체 산업 위주였던 투자계획이 수출산업 위주로 전환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로써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수출 공업화 전략이 강화되는 데에는 실물 경제의 움직임도 중요했다. 1962년 가뭄과 흉작으로 1차 산업 생산이 위축되는 와중에도 수출산업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경제개발 효과가 절실했던 정부로는 성과를 내는 분야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경제정책을 수출 주도로 전환했다.
수출 공업화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와의 관련은 더욱 깊어졌다. 수출 산업은 국내 소비 대신 외국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기에 대외무역이 중요하게 되었고, 경제의 대외 의존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급속한 공업화를 위해 국내 저축만으로는 부족했기에 해외 자본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선발 공업국의 기술 도입이 절실했다.
자본, 기술, 시장, 설비, 부품 등 수출산업과 관련된 주요 분야가 해외에서 조달됨으로써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결정적으로 높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입 총액을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는 2011년 역대 최고인 113.5%까지 치솟았고, 2013년 106.1%, 2014년 99.5%를 기록했다.
수출 공업화 전략은 자원은 물론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것은 분명했다. 내포적 공업화나 수입대체 공업화에 비해 수출 공업화 전략은 이미 준비된 세계적 규모의 자본, 기술, 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리했다.
즉 국내시장만을 상대로 한 산업화보다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공업화가 훨씬 더 큰 규모의 생산력 확충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수출 공업화 전략의 성공과 이점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게 한국의 공업화 전략은 모범 사례로 전파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수출 위주 공업화 전략은 그 대가도 컸다. 수출 촉진을 위해 수출기업에 대해서는 세금감면 혜택 · 융자우대책 · 수출자유지역 설치 및 수출개발공업단지 개발 등 각종 특혜 조치가 취해졌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커다란 희생이 요구되었다.
기술과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요구되었다. 또한 수출자유지역에 입주한 기업이나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제약되는 등 노동자들에 대한 각종 불이익이 강요되었다. 이외에도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양극화, 대외 의존도 심화에 따른 불안정성 증대 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