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3년(경종 3)경에 도사(都事)와 참판(參判)을 지낸 남철이 소년 시절 옥선(玉禪)이라는 여승을 사모하여 지은 연정가사이다. 고려대학교 소장본 『악부(樂府)』와 필사본 『전가보장(傳家寶藏)』, 『가사집(歌詞集)』 등에 수록되어 전한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위항 시인인 추재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추재집(秋齋集)』에는 자신의 경험을 직접 기록한 7언 절구의 한시 「삼첩승가(三疊僧歌)」와 그 시서(詩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토대로 가사 「승가」의 실존 여부와 작자 및 창작 연대를 추론할 수 있다. 「재송여승가」는 실존 인물이 지은 총 5작품(1첩 「승가타령」, 2첩 「송여승가」와 「승답사」, 3첩 「재송여승가」와 「여승재답사」)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작 가사 중 3첩에 포함된 작품인데, 보내고 답하는 수창(酬唱) 형식의 편지 왕래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여승이 대답하는 내용의 「여승재답사(女僧再答辭)」가 짝을 이룬다.
「재송여승가」는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46행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승의 답신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재차 강도를 높여 사랑을 갈구·호소하는 편지이다. 구성은 서사, 본사, 결사로 나뉘는데, 서사(1∼2행)에서는 여승의 거절 편지에 재차 직선적이며 강압적인 자세로 입장 표명을 한다. 본사(3∼43행)에서는 상사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심경 고백, 병을 고칠 사람은 오직 여승밖에 없다는 간구, 세속적인 삶이 종교적인 삶보다 낫다는 비유와 대비를 통한 회유를, 결사(44∼46행)에서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을 때에는 자신은 죽음을 선택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연정가사에서 주로 나타나는 사랑의 고통과 애원, 갈구, 상사 등의 감정이 노골적이며 우회적인 표현으로 잘 나타나 있다.
남 참판의 두 번째 구애 편지에 대한 여승의 답서인 「여승재답사」는 총 43행인데 남 참판의 끊임없는 사랑 고백에 여승이 결국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환속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결말은 추재 조수삼이 증언하고 있는 결말로서 이본 중에서도 『전가보장』본에서만 동일하게 나타난다. 심재완 편 『교본역대시조전서』에는 「재송여승가」의 일부 구절을 사설시조화한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로써 속인과 여승의 사랑 노래라는 특이한 소재의 가사가 당대에 널리 유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