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재집(秋齋集)』은 조선 후기 시인 조수삼의 손자가 조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의 사후에 수습되지 않은 채 세간에서 필사되어 전해왔으며, 1939년이 되어서야 연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시(詩)·서(序)·기(記) 등 다양한 문체가 수록되어 있으며, 저자가 중국과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기행시들이 주를 이룬다.
8권 4책의 연활자본으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및 서울대학교 · 고려대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손자 중묵(重默)이 유고를 정리하고 김진환(金晉桓)이 편집하였다. 이후 장홍식(張鴻植) · 이주완(李柱浣)이 교감하여 1939년 서울의 보진재(寶晉齋)에서 간행하였다. 『호산외기(壺山外記)』에는 조인영(趙寅永)이 문집 간행을 시도하였다고 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활자본으로 간행되기 이전에는 여러 종의 사본들이 전하여 왔다. 이 사본들이 저본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추재집』의 서명은 다음과 같다. 『추재시고(秋齋詩稿)』 · 『추재시초(秋齋詩抄』 · 『추재기이(秋齋紀異)』 · 『고려궁사(高麗宮詞)』 · 『경원총집(經畹叢集)』 · 『청창만록(晴牕漫錄)』 · 『추재시고(秋齋詩藁)』 등이다.
근래에는 저자의 초기 작품집으로 판명되는 『경원총집(經畹總集)』과 『연상소해(聯牀小諧)』 등이 발굴되었다.
권수에는 중국의 주문한(朱文翰)과 강련(江漣)의 서(序)와 문집 목록이 있다. 그리고 시 · 문 · 부(附)의 순으로 되어 있다. 시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권 1∼6의 시들은 27세인 1788년(정조 12) 전후로 시작하여 88세인 1849년(헌종 15)까지 지은 작품으로, 조수삼이 중국과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기행시들이 주를 이룬다.
권 1∼6은 시 1,500여 수를 수록하였고, 권 7은 『고려궁사(高麗宮詞)』 22수와 「추재기이」 ·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 · 「공령시(功令詩)」를 수록하였다. 권 8은 서(序) 5편, 기 12편, 전(傳) 6편, 제문 4편, 상량문 1편, 전(箋) 1편, 계(啓) 1편, 서(書) 7편, 찬 2편, 명(銘) 2편, 발 1편, 지(識) 1편, 서후(書後) 2편, 잡저 7편, 부(賦) 3편, 세시기(歲時記)를 수록하였고, 부록은 「추재선생전」, 끝부분에 송백옥(宋伯玉)의 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추재집』에는 적지 않은 편간(編刊)의 오류가 존재한다. 작품의 저작 시기를 감안하지 않은 편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1차~6차까지의 연행시의 편차에는 착종(錯綜)이 존재한다. 또한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의 부록격으로 알려진 「일본잡영(日本雜詠)」은 조수삼(趙秀三)의 작품이 아닌 중국의 팔민(八閩) 사희정(沙喜亭)의 작품이다.
조수삼의 시편 중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중국의 문물과 풍물을 노래한 「억석행(憶昔行)」, 홍경래의 난을 소재로 하여 난의 전개 양상과 민중의 고통을 그린 「 서구도올(西寇檮杌)」 · 「농성잡영(隴城雜詠)」 22수, 관북지방 민중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북행백절(北行百絶)」, 피폐한 농민들의 생활을 묘사한 「차경직도운(次耕織圖韻)」 46수 등이 있다.
권 8에 있는 6편의 전들은 저자의 생동하는 필치로 구사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도시 하층 서민들의 시정 생활을 그려낸 것으로 그 구성 방식이 특이하다. 제목 아래에 인물 중심의 일화를 적고 그 내용을 다시 칠언절구로 압축하여 놓았다.
『추재집』에 수록된 저작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한문 단편의 특징적 면들과 궤를 같이하는 문학 작품이다. 특히, 중국의 오숭량(吳崇梁) · 주문한 등과의 증답시는 조선 후기 한중 문화의 교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