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묘길상탑지」는 모두 4매이고, 건녕(乾寧) 2년인 895년에 조성되었다. 크기는 가로와 세로 각각 23㎝의 정사각형이고, 두께 2.4㎝의 전판(塼板)으로 제작되었다. 각 판의 앞뒷면에 걸쳐서 해서체로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해인사묘길상탑지」의 찬자는 최치원(崔致遠)이고 서자는 미상이지만, 다른 탑지와 서체가 다른 것으로 미루어 최치원의 서체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오대산사길상탑지」의 찬차는 승훈(僧訓)이고, 서자는 석희(釋喜)이다. 탑지는 해인사 일주문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의 도로변에 위치해 있으며 1996년 보물로 지정된 해인사 길상탑에 봉안되어 있었다. 1960년대에 도굴되었던 것을 1966년에 사리장엄구와 함께 회수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인사탑지의 내용은 제1판이 길상탑을 건립하는 원문과 건립 자원 및 건립 집단에 대한 것이고, 제2판은 56명의 승속(僧俗) 전망자(戰亡者)의 이름을 나열하였다. 오대산사탑지는 곡치군(哭緇軍)이라는 탑사(塔詞) 서(序)와 탑사이고, 백성산사탑지는 탑 안에 봉안한 법침(法賝)의 목록을 기록하였다.
탑지의 제명(題銘)에 의하면 2매는 해인사 길상탑(吉祥塔)과 관련된 것이고, 나머지 2매는 오대산사(五臺山寺)와 백성산사전대(百城山寺前臺)의 길상탑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인사묘길상탑지」는 통일신라 말 지방세력의 동향과 사찰을 중심으로 한 승군(僧軍)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탑의 건립과 관련하여 규모 · 비용 · 인원 등 사원경제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신라 말기에 성행하였던 조탑(造塔)신앙과 경전 등 당시 불교신앙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