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사리기 ( )

공예
작품
문화재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
이칭
이칭
작압전 발견 사리기(鵲鴨殿 發見 舍利器)
작품/조각·공예
창작 연도
865년(신라 경문왕 5)
작가
생훈(生訓), 종감(宗鑑)
소장처
운문사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2019년 03월 25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청도군
내용 요약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 작압전에서 1987년 발견되었다. 865년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납석제 합과 고려시대에 중수하면서 넣은 청동병, 조선시대인 1642년 중수하면서 넣은 유제합 뚜껑 등 각 시대별로 유행하였던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을 파악할 수 있어 사리장엄구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정의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
제작 배경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1987년 10월 작압전(鵲鴨殿) 해체 복원 당시 석불좌상의 대좌 아래에서 발견된 것으로 '작압전 발견 사리기'라고도 한다. 전탑인 작압전을 조성하면서 봉안한 사리구로 납석제 사리합에는 함통(咸通) 6년인 865년(신라 경문왕 5) 탑에 사리 2매를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사리봉안을 위해 조성한 사리구임을 알 수 있다.

내용

작압전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중 납석제 합 뚜껑 안쪽에는 음각으로 "함통육년탑치절사리이신 각생훈(咸通六年塔治節舍利二身 刻生訓)" 명문이 새겨져 있어 865년에 탑을 중수하면서 사리를 봉안하고자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유제합 뚜껑은 구연부에 점각으로 "화주종감 함통육년개조 치절사리이신 우숭덕칠년 임오삼탑중수(化主宗鑑 咸通六年改造 治節舍利二身 又崇德七年 壬午三塔重修)"가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유제합은 화주 종감이 함통 6년에 봉안한 사리 2과를 숭덕 7년인 1642년(인조 20)에 다시 중수하면서 안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영락통보와 환옥은 공양물로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석재편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작압전 발견 사리기는 865년 운문사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것으로 9세기 납석제 사리장엄구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고, 사리병은 유리나 수정이 아닌 청동병을 사용하고 있어 고려시대에 중수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인 1642년 3차 중수 때에는 숭덕 7년명 유제합 뚜껑과 영락통보를 넣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운문사 작압전 발견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 전탑의 사리장엄구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중수를 하면서 납석제 합과 청동병, 유제합 등을 중수 때마다 넣은 것을 알 수 있어 각 시대별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 등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특징

운문사 사리장엄구는 뚜껑이 있는 납석제 합, 청동사리병, 조선시대의 중수 때 넣은 것으로 보이는 숭덕 7년명 유제합(鍮製盒) 뚜껑, 주1와 환옥(丸玉) 등이 있다.

납석제 합은 굽이 달린 몸체에 세 줄의 굵은 선이 있고, 뚜껑은 정상부 가운데가 약간 부풀어 오른 모습이다. 청동 사리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높이 6㎝의 작은 병으로 굽이 달린 둥근 몸체와 짧은 목 위에는 둥근 고리가 달려 있다. 숭덕 7년명 유제합 뚜껑은 직립한 구연 위로 안쪽으로 꺾여 정상부에서 편평해지는 모습이다.

납석제 합은 통일신라 9세기의 납석제 호와 합 등이 사리장엄구의 외호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경향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고, 청동병은 유리병을 대신해 사용한 것으로 기형은 유리병과 유사하다.

의의 및 평가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통일신라 봉안에 이어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중수가 이루어져 각 시대별 사리구의 중수와 관련된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19년 3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논문

최응천, 「운문사 소장 불교공예품의 현황과 특징 고찰」(『강좌미술사』 50,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8)
주석
주1

중국 명나라 영락 9년(1411)에 주조된 청동전(靑銅錢). 표면에 ‘영락통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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