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
제작 배경
내용
유제합 뚜껑은 구연부에 점각으로 "화주종감 함통육년개조 치절사리이신 우숭덕칠년 임오삼탑중수(化主宗鑑 咸通六年改造 治節舍利二身 又崇德七年 壬午三塔重修)"가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유제합은 화주 종감이 함통 6년에 봉안한 사리 2과를 숭덕 7년인 1642년(인조 20)에 다시 중수하면서 안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영락통보와 환옥은 공양물로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석재편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작압전 발견 사리기는 865년 운문사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것으로 9세기 납석제 사리장엄구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고, 사리병은 유리나 수정이 아닌 청동병을 사용하고 있어 고려시대에 중수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인 1642년 3차 중수 때에는 숭덕 7년명 유제합 뚜껑과 영락통보를 넣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운문사 작압전 발견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 전탑의 사리장엄구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중수를 하면서 납석제 합과 청동병, 유제합 등을 중수 때마다 넣은 것을 알 수 있어 각 시대별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 등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특징
납석제 합은 굽이 달린 몸체에 세 줄의 굵은 선이 있고, 뚜껑은 정상부 가운데가 약간 부풀어 오른 모습이다. 청동 사리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높이 6㎝의 작은 병으로 굽이 달린 둥근 몸체와 짧은 목 위에는 둥근 고리가 달려 있다. 숭덕 7년명 유제합 뚜껑은 직립한 구연 위로 안쪽으로 꺾여 정상부에서 편평해지는 모습이다.
납석제 합은 통일신라 9세기의 납석제 호와 합 등이 사리장엄구의 외호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경향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고, 청동병은 유리병을 대신해 사용한 것으로 기형은 유리병과 유사하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논문
- 최응천, 「운문사 소장 불교공예품의 현황과 특징 고찰」(『강좌미술사』 50,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8)
주석
-
주1
: 중국 명나라 영락 9년(1411)에 주조된 청동전(靑銅錢). 표면에 ‘영락통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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