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 작압전에서 1987년 발견되었다. 865년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납석제 합과 고려시대에 중수하면서 넣은 청동병, 조선시대인 1642년 중수하면서 넣은 유제합 뚜껑 등 각 시대별로 유행하였던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을 파악할 수 있어 사리장엄구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작압전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중 납석제 합 뚜껑 안쪽에는 음각으로 “함통육년탑치절사리이신 각생훈(咸通六年塔治節舍利二身 刻生訓)” 명문이 새겨져 있어 865년에 탑을 중수하면서 사리를 봉안하고자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유제합 뚜껑은 구연부에 점각으로 "화주종감 함통육년개조 치절사리이신 우숭덕칠년 임오삼탑중수(化主宗鑑 咸通六年改造 治節舍利二身 又崇德七年 壬午三塔重修)"가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유제합은 화주 종감이 함통 6년에 봉안한 사리 2과를 숭덕 7년인 1642년(인조 20)에 다시 중수하면서 안치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영락통보와 환옥은 공양물로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석재편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작압전 발견 사리기는 865년 운문사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것으로 9세기 납석제 사리장엄구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고, 사리병은 유리나 수정이 아닌 청동병을 사용하고 있어 고려시대에 중수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인 1642년 3차 중수 때에는 숭덕 7년명 유제합 뚜껑과 영락통보를 넣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운문사 작압전 발견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 전탑의 사리장엄구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중수를 하면서 납석제 합과 청동병, 유제합 등을 중수 때마다 넣은 것을 알 수 있어 각 시대별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 등을 알 수 있다.
운문사 사리장엄구는 뚜껑이 있는 납석제 합, 청동사리병, 조선시대의 중수 때 넣은 것으로 보이는 숭덕 7년명 유제합(鍮製盒) 뚜껑, 영락통보(永樂通寶)와 환옥(丸玉) 등이 있다.
납석제 합은 굽이 달린 몸체에 세 줄의 굵은 선이 있고, 뚜껑은 정상부 가운데가 약간 부풀어 오른 모습이다. 청동 사리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높이 6㎝의 작은 병으로 굽이 달린 둥근 몸체와 짧은 목 위에는 둥근 고리가 달려 있다. 숭덕 7년명 유제합 뚜껑은 직립한 구연 위로 안쪽으로 꺾여 정상부에서 편평해지는 모습이다.
납석제 합은 통일신라 9세기의 납석제 호와 합 등이 사리장엄구의 외호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경향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고, 청동병은 유리병을 대신해 사용한 것으로 기형은 유리병과 유사하다.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통일신라 봉안에 이어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중수가 이루어져 각 시대별 사리구의 중수와 관련된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19년 3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