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제자는 붓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중 뛰어났다는 10인의 제자를 가리킨다. 석가십성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는 10가지 분야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다. 사리불은 지혜가 제일이고, 목건련은 신통력이 제일이다. 마하가섭은 두타가 제일이고, 아나율은 천안 제일로 칭송되었다. 아난다는 다문 제일이고, 우바리는 지계가 제일이고, 부루나는 설법이 제일이었다. 수보리는 해공이 제일이고, 가전연은 논의가 제일이며, 라훌라는 밀행이 제일이었다. 십대제자 명단에는 비구니와 재가 제자가 1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비구 출가자 중심의 명단임을 알 수 있다.
십대제자는 10가지 분야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다.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舍利佛), 신통력이 제일인 목건련(目健連), 두타(頭陀) 제일인 마하가섭(摩訶迦葉), 천안(天眼) 제일로 칭송되는 아나율(阿那律), 다문(多聞) 제일의 아난다(阿難陀), 지계(持戒) 제일의 우바리(優婆離), 설법(說法) 제일의 부루나(富樓那), 해공(解空) 제일의 수보리(須菩提), 논의(論議) 제일의 가전연(迦旃延), 밀행(密行) 제일의 라훌라(羅喉羅) 등 10인이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십대제자가 한 세트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초기 불교 경전에는 십대제자라는 말은 없다. 십대제자의 이름은 문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유마경(維摩經)』에 나오는 명단이 널리 알려져 있다.
사리불[Śāripūtra(산스크리트어. 이하⒮로 표기), Sāriputta(팔리어. 이하⒫로 표기)]은 브라만 출신으로 왕사성(王舍城)의 북쪽 부근에 있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회의론자 산자야(Sanjaya)의 제자가 되어 수행하다가, 불제자인 아사지[馬勝]의 설법을 듣고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하였다. 지혜가 뛰어나 ‘지혜 제일(智慧第一)’ 또는 ‘법왕자(法王子)’라고 불렸다. 경전에 의하면 종종 석가모니 붓다를 대신하여 설법도 하였다. 석가모니의 아들인 라훌라가 출가하였을 때 그를 가르치고 돌보는 역할을 하였다.
목건련(Maudgalyāyana⒮, Moggallāna⒫)은 브라만 출신으로 왕사성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사리불과 함께 육사외도의 한 사람인 산자야를 모시고 수행하였으나 사리불이 붓다에게 귀의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과 함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였다. 하늘을 나는 등 여러 가지 신통에 뛰어났기 때문에 '신통 제일'이라 칭송되었다.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 또는 목련존자(木蓮尊者)라고도 부른다. 외도에 의해 음해를 받았으며, 불교 교단을 질투하던 외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생전에 악업을 많이 지은 어머니가 죽어 지옥에 태어나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보고서,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승려들을 공양하여 어머니를 구출하였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음력 7월 15일의 우란분절(盂蘭分節)은 이 설화에서 유래한다.
마하가섭(Mahākāśyapa⒮, Mahākassapa⒫)은 가섭 또는 대가섭(大迦葉)이라고도 하며, 의역하여 대음광(大飮光) 또는 대구씨(大龜氏)라고도 부른다. 마가다국 왕사성의 큰 부자였던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출가하려고 하였으나 부모의 반대로 결혼하게 되었으며, 이후 부모가 죽자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되었다. 마하가섭은 엄격한 금욕 수행을 잘 하였으므로 ‘두타 제일’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가섭은 붓다의 입멸 후 사실상 불교 승단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붓다가 가르친 교법(敎法)과 계율을 결집하는 모임인 제1결집을 주도하였다. 중국 선종(禪宗)에서는 마하가섭을 선법(禪法)을 받아 이어준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는 이야기로 붓다의 후계자가 가섭이었음을 주장한다. 마하가섭은 말년에 왕사성 근교 계족산에 들어가서 석가모니 붓다가 맡긴 가사를 미륵불에게 전달하기 위해 선정(禪定)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전하는 문헌도 있다.
아나율(Aniruddha⒮, Anuruddha⒫)은 석가모니 붓다의 사촌으로 붓다의 다른 사촌인 아난다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 붓다가 설법하는 자리에서 졸다가 지적을 받은 후 눈을 감지 않고 수행하다가, 눈에 병이 났고 마침내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천안(天眼)이 열려 '천안 제일'이라고 불렸다. 코삼비(Kosambi)에서 승가가 분열이 되자 붓다는 그 분쟁 지역에서 나와 아나율과 함께 머물었다. 실명한 후 바느질할 때 어려움을 호소하니 붓다가 직접 와서 도와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아난다(Ānanda⒮⒫)는 줄여서 '아난'이라고 하며, 의역하여 경희(慶喜)라고도 불린다. 아난은 석가모니불의 사촌동생으로 난다, 아나율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25년간 항상 붓다를 가까이 모시면서 그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들었으므로, ‘다문 제일’ 로 불렸다. 여성의 출가 교단, 즉 비구니 승가의 성립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불멸 후 결집 할 때 경전을 편집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불교 경전 첫머리에 들어가는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나'는 아난다를 가리킨다. 아난다는 초기 불교 경전의 여러 곳에서 붓다의 대담자로 등장하며, 기억력이 출중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바리(Upāli⒮⒫)는 천민 계급 출신으로 출가 전 카필라바스투의 석가족 왕실의 이발사였다. 아나율 등 붓다의 사촌들이 출가하는 것을 보고 동반하여 출가하였다. 십대제자 중 유일하게 천민 계급 출신이지만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승단의 규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준수하였다. 그래서 ‘지계 제일’ 또는 ‘지율(持律) 제일’로 불린다. 붓다의 입멸 직후 왕사성에서 개최된 결집에서 우바리는 율(律, Vinaya)과 관련된 사항을 결집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부루나(Pūrṇa Maitrāyaniputra⒮, Puṇṇa Mantānīputta⒫)는 카필라바스투 근교 부유한 브라만 가문에서 붓다가 탄생하던 날에 태어났다. 불법을 가르치는데 탁월하여 '설법 제일'이라 칭한다. 붓다가 정각을 이루고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를 찾아가 귀의하게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알리는데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였다. 부루나가 험한 지역에 가서 전법 활동을 하려는 것에 붓다가 걱정하자 부루나는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칼에 찔려 죽어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한다. 그의 포교에 의해 500명의 우바새와 500명의 우바이가 생겨났으며, 500개의 승원이 지어졌다고 한다.
수보리(Subhūti⒮⒫)는 사위국(舍衛國)의 브라만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에 영리하였지만 성질이 좋지 않아 쉽게 화를 내었다. 숙부였던 수달다(須達多) 장자가 기원정사(祇園精舎)를 건립하고 붓다를 초청하여 법문을 들었을 때, 수보리는 그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 붓다의 가르침 중 공(空)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가장 빠르게 그리고 깊게 이해하였으므로 ‘해공 제일’이라고 한다. 내면의 고요를 응시하여 오로지 수행에만 힘쓰고 남과 대립하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으므로 ‘무쟁 제일(無諍第一)’이라고도 불렸다. 또 남이 보지 않아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여 ‘은둔 제일(隱遁第一)’이라 칭해지기도 하였다. 수보리는 대승불교 경전 중 금강경 등 공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는 반야부 계통의 경전에 자주 등장한다.
가전연(Kātyāyana⒮⒫)은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Mahākātyāyana⒮, Mahākaccāna⒫)이라고도 불린다. 가전연은 서인도의 아반티(Avanti)에서 태어났다. 가전연은 브라만 출신으로 부친이 국왕의 스승인 재력과 권력을 갖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전연의 부모는 가전연을 학자로 유명한 외삼촌에게 보냈다. 그는 숙부인 아시타(Asita)로부터 여러 종교를 배웠다. 아시타는 가전연에게 붓다의 제자가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붓다의 말씀을 해석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탁월하여 ‘논의 제일’, 또는 '분별 제일'이라 불리게 되었다. 가전연은 도리에 맞는 명쾌한 변론으로써 불법을 지키고 전하는 데 헌신적이었다. 가전연은 브라만 논사들이나 국왕, 귀족들을 감화시키는데 뛰어났다.
라훌라(Rāhula⒮⒫)는 붓다가 출가하기 전 부인 야소다라(Yasodharā)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태자 싯다르타가 출가 직전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태자는 "아, 라훌라!"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갓 태어난 아들은 라훌라 즉 ‘장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도 인욕(忍辱)과 계율 준수를 철저히 해 ‘밀행 제일(密行第一)’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붓다가 성도 후 고국 가비라성으로 돌아왔을 때에 라훌라를 출가시켰다. 문헌에는 그때 나이가 6세, 9세, 12세, 15세라고 각기 달리 전하지만, 불교사에서 최초의 사미(沙彌)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5명의 수행자에게 최초의 설법을 한 이후 붓다의 제자는 계속 늘었는데, 이들 가운데 특출한 제자 10인을 통칭하여 십대제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초기불교 교단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십대제자 명단에는 비구니와 재가 제자가 1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비구 출가자 중심의 명단임을 알 수 있다.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승불교에 속하였으므로 십대제자에 대한 신앙이나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주 석굴암의 10대 제자상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