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은 세계의 모든 중생과 사물이 바다 가운데에 도장처럼 깊게 비추어진다는 뜻이다. 대해인, 해인삼매, 해인정이라고도 한다. 인드라신이 아수라와 투쟁할 때 일체의 군대와 병기가 바다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남이 마치 인쇄된 문자와 같기에 해인이라 하였다 한다. 의상은 깨달은 자의 세계, 중생들의 세계, 기반으로서의 환경 세계가 모두 해인삼매로부터 출현한다고 하였다. 신라에서는 해인삼매가 의상의 법성게 가운데 이타행의 구도로 설명되면서 5중해인, 10중해인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의상(義湘, 625-702)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는 해인을 '대해가 아주 깊은 것'을 비유한 명칭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인드라신이 아수라와 투쟁할 때 일체의 군대와 병기가 그 가운데 현저하여 숨겨짐 없이 분명함이 마치 인쇄된 문자와 같기에 해인이라고 이름 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의상의 저술에 처음 보인다.
의상의 스승인 지엄(智儼, 602-668)은, 초기 저작인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에서는 해인삼매에 관해서 주목하지 않고 단지 보살이 작용하기 위해 의거하는 삼매로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만년의 저작에서 비로소 해인삼매를 중요시하여 『공목장(孔目章)』에서 화엄일승의 모든 교설이 해인정으로부터 비롯한다고 설명한다. 지엄의 해인삼매에 대한 이해는 의상에게도 수용되어 의상은 석가여래의 교설에 포함되는 삼종의 세계, 즉 깨달은 자의 세계, 중생들의 세계, 기반으로서의 환경세계가 모두 해인삼매로부터 풍성하게 출현한다고 하였다.
법장(法藏, 643-712)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법장은 해인정에 의해 보살들을 위해 무진(無盡)의 교법을 교설한다고 하여 대상을 보살에 한정시키고 있다. 즉 부처가 교설함에 있어 본질로 삼는 10가지 범주를 나누는 가운데 9번째를 해인병현문(海印炳現門)에 두었다. 그리하여 부처의 입장인 결과의 계위에서 보면 해인삼매에 의해서 모든 교법이 설해지고, 보현 등의 대보살이 이 삼매를 얻어 부처님과 같은 작용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십신(十信) 만심(滿心)의 보현의 계위, 즉 십주(十住)의 계위에서 이 삼매를 얻는다고 하여 보살에 한정시키고 있다.
의상의 법성게에서는 「능히 어짐을 행하시는 분(부처)의 해인삼매에서[또는 능히 해인삼매에 들어] 마음대로 불가사의한 것을 풍성히 쏟아낸다[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판본에 따라 '仁'이 ‘入’ 또는 '人'으로 되어 있으나, '人'은 誤記로 보임]」라는 게송이 있다. 이 구는 삼매 자체의 동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이타행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의상의 해인삼매의 이해는 지엄과 법장이 강조한 근원적 삼매로서의 성격보다는, 종교 실천철학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후 의상의 계통에서는 삼매에 의거해서만이 중생에게 진리의 비를 뜻대로 내리게 할 수 있고, 중생은 각자의 역량대로 이 진리를 취할 수 있다는 사유가 전통적으로 자리하였다.
신라의 명효(明皛)는 의상의 법성게(法性偈)를 변형시켜 『해인삼매론』을 지으면서, 해인을 대삼매로 규정하고, 그것의 공능(功能)이 수행자를 빨리 불퇴의 계위에 이르게 하여 작은 방편으로 큰 이익을 얻는데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방편 교설의 요체를 게송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도인으로써 해인삼매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에게 게송은 단순히 게송이 아니라 다라니로써 일체제불의 공덕을 다 포함하고 있었다.
한편, 의상의 종교 실천적 해인삼매에 대한 사유는 중층화 되어 5해인 또는 5중해인으로 전개된다. 5해인설은 현재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 균여(均如, 923-973)의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 『석화엄교분기원통초(釋華嚴敎分記圓通鈔)』에 소개되어 있다. 5해인설은 윤형(綸逈)화상이 당에서 돌아와 전했다고도 하는데, 전승에 따르면 지엄이 해인설을 분류해서 정리한 것이 5해인설이다. 5해인 가운데 앞의 세 해인이 화엄의 교판적에서 시교 · 종교 · 돈교에 해당하고 나머지 2해인이 일승에 해당한다. 고려시대 균여(均如)에 따르면 5해인 가운데 일승의 2해인에서 5중해인으로 전개된다. 5중해인은 『법계도』의 제목과 관련해서도 설명되며, 교설과 의의(증득)의 관계에서도 설명된다. 5해인의 명칭을 예로 들면, 망상해인(忘像海印), 현상해인(現像海印), 불외향해인(佛外向海印), 보현입정관해인(普賢入定觀海印), 보현출정재심중급현언어해인(普賢出定在心中及現言語海印)이다. 이로써 제5중해인에서 언어로 교설함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5중해인의 명칭은 교(敎)와 의(義)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의(義) | 교(敎) |
---|---|
망상해인(忘像海印) | 현상해인(現像海印) |
현상해인(現像海印) | 불외향(佛外向) |
불외향(佛外向) | 보현입정관(普賢入定觀) |
보현입정(普賢入定) | 출관재심중(出觀在心中) |
출정재심중(出定在心) | 언어중현(言語中現) |
〈표 1〉 오중해인의 명칭 |
위의 설명처럼 5중해인은 중층적이다. 신라에서는 5중해인의 다양한 버전이 있었는데, 균여는 이와 같은 해인설을 종합하면서 화엄종의 원만수이고, 무진수인 10해인으로 증광시킨다. 10해인설도 역시 여러 계통이 있었다. 한국불교에서 해인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삼매와 교설이라는 두 축을 설명하는 종교철학적 도구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의상의 계통에서는 의상의 법성게 30구 가운데 「능히 어짐을 행하는 분의 삼매 가운데(能仁海印三昧中)」의 구가 포함된 이타행의 4구를 제4중해인에 설정한다. 또한 삼매 내에 이타상이 있음을 해명하기 위하여 해인과 이타에 대한 논의가 개진된다. 예를 들어 『법계도』 주석의 하나인 『대기(大記)』에서는, 제4중해인에는 동교(同敎)와 별교(別敎)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타상이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즉, 한 길로 된 도인[一道印]에 근거한다면 차별상이 없기 때문에 별교가 되고, 도인이 구불구불 도는 것에 따르면 근기에 차별상이 있기 때문에 동교 중에서 대상에 따르는 의의를 갖춘다. 그 구체적인 교화 대상은 선재동자와 위광(威光)보살이 거론된다. 이들은 삼매 가운데의 대상이 되며 근기의 낮고 깊음이 없다. 이것은 제5중의 교화될 대상이 삼매에서 나온 이후의 대상이면서 심천이 구분되는 것과 다르다. 즉, 해인의 상태에서 이타행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제4중해인뿐이다. 왜냐하면 5중해인은 해인이라고는 하지만 삼매로부터 나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같은 『법계도』의 주석서인 『진기(眞記)』에서는, 언어를 떠난 경계인 해인을 이타행 4구에 와서 비로소 밝히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이타의 연기에 실체가 없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다만 십불의 내증으로서의 해인에서 일어나는 것이 연기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만약 내증에 의하지 않은 경우 진리가 사사로이 은폐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법계도』의 주석서인 『법기』에서도 해인 중에 진실한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있다고 한다. 삼세간법을 다 수용하는 것이 자리이며, 이 법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타이다. 그러나 중생이란 어차피 해인삼매에 포섭된 중생인 한에서는 일승에 자리이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응하여 교화시키기 때문에 이타가 성립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의상계통의 화엄학에서의 해인삼매는 이타행의 강조를 통하여 그 특색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타의 해인은 5중해인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확고한 의상계의 해인론으로 이론화되었다.
한편, 해인은 한국 설화에서 나오는 특이한 형태로 전승되며, 『한국구비문학대계』에 16편의 관련 설화가 전해진다. 바닷 속의 용왕국에 있던 해인을 지상으로 가져온 인물은 율곡, 서산대사, 유학자, 양반, 할아버지 등 다양하며, 용왕에게 사용법을 가르쳐 받아 지상으로 와서 그 힘을 이용하여 사람과 짐승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보물신앙으로 자리하였다.
해인은 바다 속에 모든 것이 깊이 도장처럼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해인삼매라는 용어로 회자되었고, 화엄종에서 중시되었다. 해인삼매는 모든 대상과 교법을 풍성히 나타내는 삼매이다. 특히, 신라에서는 해인삼매가 의상의 법성게 가운데 이타행의 구도로 설명되면서 5중해인, 10중해인으로 전개되었고, 삼매와 이타행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천착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라의 명효는 『해인삼매론』을 찬술하였다. 이처럼 해인은 특히 한국에서 주목을 받아 전개되었으며, 해인 사상은 불교라는 종교를 넘어 민간에서 설화로까지 전승될만큼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