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에서 홛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낙양군관학교의 운영과 교육훈련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학생들에게는 휴가나 외출이 통제된 채 교육훈련이 실시되었다. 지청천(池靑天, 일명 이청천)이 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범석이 특별훈련반 학생대장이었다. 한성도는 노태준 · 안춘생 등과 함께 훈련받았다. 한성도는 한인특별반을 마치고 임시정부 대열에 합류하여 1936년경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상임위원을 지냈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참모부 제3과원으로 이진영(李進榮) · 조성철(趙誠轍) 등과 활동하였다.
임시정부가 충칭〔重慶〕으로 이전한 후 충칭에도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과 한국광복군훈련반(한광반) 출신들과 중국군에 포로가 된 한적(韓籍) 병사 등 한인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충칭의 투차오〔土橋, 토교〕에 설치한 토교대(土橋隊) 배속되었다. 토교대는 상설 조직체가 아니라 한인 청년들의 집결에 따라 그때그때 임시로 편성되었다.
토교대는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토교대의 임무는 광복군 총사령부 경비 및 고위 요원의 호위, 광복군 기간 간부 및 건국 후의 국군 사관 요원의 양성, 일본군 가운데 한적 사병에 대한 탈출 공작, 총사령부 지시에 의한 공작 수행 등이었다.
토교대는 세 차례에 걸쳐 조직되었으며, 1945년 3월 일본군에 근무하다가 중국군 포로가 된 한적 포로들로 구성되었다. 한성도는 이때 토교대 대장을 맡았으며, 백정갑(白正甲)은 부대장을 맡아 대원을 훈련시켰다. 토교대는 일종의 보충대 성격이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경호를 위한 보충부대장, 경호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한시준, 『한국광복군 연구』(일조각, 1993)
- 『독립유공자공훈록』 5(국가보훈처, 1988)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4권, 제6권(고려서림, 1983)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5(탐구당, 1968)
-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권(독립문화사, 196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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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의 군인ㆍ정치가ㆍ중화민국의 총통(1887~1975). 이름은 중정(中正). 쑨원(孫文)에게 배웠으며, 국민당 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어 북벌(北伐)에 성공하고 난징(南京) 정부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항일전에 힘썼으며, 헌정(憲政)하의 초대 총통에 취임하였으나 중공과의 전투에 패하여 정부를 타이완으로 옮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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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중국 국민당이 1925년 광저우(廣州)에 수립한 중화민국 정부. 쑨원(孫文)이 죽은 후 후한민(胡漢民)이 광둥 정부(廣東政府)를 개혁하여 고친 이름으로, 후에 장제스(蔣介石)의 지도 아래 민주 공화국으로 발족하였으나, 중국 공산당에 패하여 1949년 대만으로 물러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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