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으로 책을 찍고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각각의 과정마다 특수한 기능을 지닌 여러 기술자가 참여함은 물론, 책의 저술과 원고의 정리에 이어 이를 받아 새기고 찍어내는 여러 과정이 필연적이다. 따라서 각 작업 과정과 관련된,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책의 간행에 참여하기 때문에 책의 서문 및 발문 그리고 책의 권말(卷末)에 그 참여자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이러한 역할 분담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불서이다. 불서에는 권말 부분에 간행 기록과 함께 일을 맡아서 처리한 사람들이 수행한 역할과 그들의 이름을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간행의 업무 분담은 서사자(書寫者), 각수(刻手), 교정자(校正者)와 기타 참여자들이 나누어 맡게 된다. 그 가운데 서사자들이 쓴 판하본을 나무에 붙이고 그대로 새겨내는 작업은 각수들의 몫이며, 판각의 업무는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주로 전문 각수들이 담당하였다.
각수에 대한 기록 역시 책의 권말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판심(版心)이나 변란(邊欄) 밖에 각수명(刻手名)을 새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각수들을 각자장(刻字匠), 각공(刻工), 각원(刻員)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문헌에서는 각수, 각자(刻字), 각(刻), 간자(刊字), 각원, 각공, 도(刀), 간각(刊刻), 원각(願刻), 양공(良工) 등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고려와 조선시대 간행된 불서의 경우, 권말, 간기(刊記), 판구(版口), 어미(魚尾), 변란(邊欄) 밖 좌우에서 판각에 참여한 각수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각수명은 대부분 승려 신분으로 판각에 참여했던 각수승(刻手僧)의 약칭명이 기입되어 있다. 각수승은 승려 사회에서 직분상 중급 및 하급 계층의 승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꼭 그렇지는 않고 주지와 주지를 역임한 승려가 불서를 판각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각수승들이 승려 사회에서 꼭 하급 계층에 해당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승려들이 각수로 참여하여 판각하는 일이 승려로서 수행해야 할 업은 아니다. 하지만 불서를 간행하는 작업이 불법을 널리 알리는 방편이고, 무상의 공덕을 쌓는 방도기에 그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승려들이 기꺼이 불서의 간행에 참여하였다. 또한 승려들은 작업의 대가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불서의 개판 비용을 부담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세종 연간(世宗年間)에 억불책의 하나로 도성 내외에서 군역을 기피한 승려를 단속한 일이 있다. 이 때 서책 장배승(粧褙僧)과 주자소의 각자승은 소임이 있는 자라 하여 그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또 호구 장적을 보면 각수는 이름 위에 각수라는 직분이 명기되어 있는데, 이는 각수가 국가 사회의 전문 기술 인력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각수승들은 사찰 및 관서, 나아가 사가에서의 서책들을 간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